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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의 끈끈한 생명력처럼...
13  쭈니 2021.03.05 13:11:29
조회 249 댓글 0 신고

감독 : 정이삭

주연 :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화제의 중심에 서다.

2021년 화제작은 단연 [미나리]이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미나리]는 작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하게 만드는 횡보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미나리]의 경우는 [기생충]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순수 한국 영화였던 [기생충]은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과시했었다. 그에 반해 [미나리]는 엄연히 미국 영화이다. 그런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의 대사가 대부분 한국어라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탈락하여 외국어 영화상의 후보에만 올려놓은 것이다. 이는 곧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어떻게 될지...

코로나19로 인하여 개봉 영화들마다 수난을 겪고 있는 요즘, 이렇게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은 최고의 홍보 효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미나리]는 영화적 재미를 담보로 하고 있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날부터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이다. 3월 4일 목요일에는 새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관객 수 두 배 이상의 격차로 제치고 1위를 지켜냈으니 당분간 국내 극장가는 [미나리]가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미나리]의 개봉일인 3월 3일 수요일 일찌감치 극장에서 보고 왔다. 올해 처음으로 평일에 극장에서 본 영화이다.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의 한국인 이민자인 제이콥(스티븐 연) 가족의 이야기이다. 제이콥 가족은 아칸소의 작은 마을에 터를 잡는다. 제이콥의 꿈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는 것. 제이콥의 아내인 모니카(한예리)는 몸이 약한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 때문에 병원이 가까운 대도시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제이콥을 꿈을 꺾지는 못한다. 결국 데이빗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모니카의 어머니인 순자(윤여정)까지 미국에 오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예상하지 못했던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그들

25년 전의 일이다. 나와 친구들이 자주 가던 왕십리역 당구장이 있었다. 그곳 사장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당구장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왜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려고 하느냐고 여쭤보았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당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교회 목사가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고, 미국의 국민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당구장 사장님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장사가 잘 되던 당구장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과연 그분이 미국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행복하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소한 미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이콥의 가족을 보며 25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당구장 사장님이 떠올랐다. (제발 그곳에서 원하시던 행복을 찾으셨기를...) 제이콥과 모니카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단지 아칸소로 이사 오기 전 대도시에서의 그들의 삶은 추측이 가능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부부가 함께 병아리 감별사 일을 했지만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데이빗의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이콥은 아칸소에서 마지막 도전을 선택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제이콥에게 아칸소의 농장은 그만큼 간절했을 것이다.

나의 아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농장에 대한 꿈에 부푼 제이콥과는 달리 모니카는 현실적으로 가족이 처한 상황을 직시한다. 그녀에겐 지켜야 할 어린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묵묵히 참아내는 맏딸 앤(노엘 조)과 아직 철이 없는 막내아들 데이빗. 모니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이콥의 꿈이 아닌, 바로 자식들을 지키는 일이다. 그렇기에 제이콥과 모니카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제이콥은 아칸소에서 희망을 보았고, 모니카는 불안을 느꼈으니까.

무쓸모가 될 수 없었던 순자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칸소에서도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한다. 그곳에서는 병아리를 암컷과 수컷으로 나누는데, 아무 쓸모가 없는 수컷은 폐기처분이 된다. 작고 귀여운 병아리를 그저 쓸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각해 버린다니, 참 끔찍하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병아리의 문제 만은 아니다. 우리 인간들도 사회에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던가. 사회에 쓸모가 없는 인간들은 결국 도태되어 사회라는 벽의 바깥으로 밀려나 버린다. 결국 병아리도, 그리고 우리 인간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순자는 분명 쓸모가 있는 존재였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일을 하는 동안 앤과 데이빗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쓸모는 충분하다. 하지만 순자는 풍에 걸리고 만다.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무쓸모를 넘어 제이콥과 모니카의 짐이 되어 버린다. 순자도 잘 알고 있다. 쓸모가 없다면 살아있을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제이콥 부부에게 재난을 안겨준다. 영화 후반부 자신의 무쓸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순자가 멍한 표정으로 집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역시 늙으면 순자처럼 사회에 무쓸모인 존재가 되지 않던가. 하지만 성숙한 사회라면 아무리 무 쓸모의 인간이라도 보듬어 안아야 한다. 데이빗과 앤이 순자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아 줬던 것처럼...

윤여정은 [미나리]로 미국 내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 27관왕을 기록했으며, 그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비록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모리타니안]의 조디 포스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여우조연상 후보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를 뛰어넘는 할머니 연기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나리]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순자는 가난했던 시절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워 냈고, 늙고 나서도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했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 순자야말로 [미나리]를 더욱 한국적으로 만든 주역이라 할 수 있다.

그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제이콥의 가족은 순자의 실수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우울한 분위기 속에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치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고난을 이겨내고 잘 적응해 나갈 것이다. 영화 마지막의 희망적인 장면을 보며 영화의 제목이 왜 '미나리'인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이콥의 변화이다. 영화 초반 그는 미국인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농장을 하기 위해 우물을 파야 할 때도 미국인 작업자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우물을 판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우물이 메말라 버려서 생활수를 끌어다 써야 했다. 모니카가 외로울까 봐 교회에 갔을 때에도 제이콥은 교회 사람들을 경계했다. 아마도 그가 폴(윌 패튼)과 같이 농장 일을 했던 것은 그가 주한미군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던 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미국인을 고용해서 새로운 우물 자리를 찾는다. 미국에서 적응을 하려면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 제이콥은 이 모든 고난을 겪으며 결국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니카 역시 아칸소의 삶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제이콥의 꿈보다 어린 자식들을 우선시하던 그녀. 그런데 아칸소로 이사를 오며 데이빗의 병은 호전되어 간다. 아칸소의 맑은 공기가 데이빗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비록 자식들보다 농장을 먼저 생각한 제이콥에게 실망했지만, 결과적으로 제이콥의 선택은 데이빗에게도 좋은 결과가 된 셈이다. 이제 제이콥과 모니카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미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이번엔 예전보다 더 잘 헤쳐나갈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같은 존재이니까.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다.

[미나리]를 보기 전에도 예상을 했던 일이지만 솔직히 [미나리]는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다. 나는 현실적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을 넘어선 판타지한 영화가 나의 취향이다. 내가 보지 못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구현한 영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미나리]는 정반대이다. 물론 내가 미국 이민자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미나리]는 제이콥이 꿈꾸었던 농장의 한가운데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영화 자체가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제이콥이 불타버린 창고에서 울부짖을 때 내 마음도 쓰라리게 아팠다.

그리고 [미나리]는 과장을 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이콥의 비극을 극대화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제이콥이 철저하게 무너졌을 때 관객이 느꼈을 절망감을 영화적 재미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제이콥이 처한 위기는 상상력이 부족한 관객이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이 떨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고난이었다. 마치 정이삭 감독이 아는 지인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관객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이다.

이렇게 [미나리]는 내 취향의 영화도 아니고, 엄밀하게 따진다면 영화적 재미도 부족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어떤 영화보다 여운은 깊게 남는다. 영화 마지막 멍한 표정으로 집 반대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던 순자의 모습에서, 할머니를 싫어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를 붙잡고 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던 데이빗과 앤의 울부짖음에서, 채소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불타버린 창고로 뛰어 들어간 제이콥과 모니카의 간절함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깊은 여운을 느꼈다. [미나리]는 비록 [기생충]처럼 충격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미국에 이민을 간 한국인 가족의 모습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더욱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결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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