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최신 공개 영화 세 편...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판타지 아일랜드], [에놀라 홈즈]
지난 주말, 나의 목표는 넷플릭스 최신작들을 보는 것이었다. 초호화 캐스팅에 빛나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와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의 모험을 담은 [에놀라 홈즈]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비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소재가 꽤 매력적으로 보이는 공포 영화 [판타지 아일랜드]까지 봤다. 솔직히 [돈렛고]까지 봤더라면 완벽했는데 (초반 부분만 잠깐 보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봤다) 이 정도면 지난 주말의 내 목표는 충실히 채운 듯.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 신에 대한 믿음을 빙자한 광기라는 이름의 악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감독 : 안토니오 캠포
주연 : 톰 홀랜드, 빌 스카스가드, 라일리 키오, 제이슨 클라크
나에게 톰 홀랜드는 여전히 귀여운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일 뿐이다. 그런 그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렇기에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60년대 미국에서 소년 아빈 러셀(톰 홀랜드)이 겪게 되는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악마는 모든 순간에 존재한다'라는 아버지의 믿음에 따라 아빈은 악을 처단하는 살인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그의 어머니 샬럿(헤일리 베넷)이 병으로 죽으면서부터이다. 아버지인 윌러드(빌 스카스가드)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빈이 정성껏 키우던 반려견을 제물로 바치는 광기에 휩싸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아내가 죽자 자살로 그 삶을 마감한다. 아버지의 자살로 고아가 된 아빈은 조부모의 집에서 유년 생활을 보내는데, 그와는 친남매처럼 지냈던 리노라(엘리자 스캔런)가 마을 목사인 프레스턴(로버트 패틴슨)에게 능욕을 당하고 버려진 충격에 자살을 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프레스턴을 살해하고 고향으로 향하던 아빈은 엽기적인 살인마 부부 칼(제이슨 클라크)과 샌디(라일리 키오)를 만나지만 겨우 그들을 죽여 살아남았고, 자신의 동생이 저지른 살인 행각이 들통날 것을 우려한 샌디의 오빠이자 마을 보안관 리(세바스찬 스탠)와의 목숨을 건 결전을 벌인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존재하는 악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악마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광기에 휩싸여 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들이 키우는 반려견을 죽여 십자가에 매단 윌러드의 행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아내 헬렌(미아 바시코프스카)를 죽이고 아내가 부활하기를 기다리는 로이(해리 멜링), 신부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마을의 젊은 여성들을 맘껏 능욕하는 프레스틴, 그리고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히치하이커를 유인해 살인하고 사진을 찍는 칼과 샌디까지... 물론 리의 살인은 자신의 명예욕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그들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잔인한 악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아빈의 행위는 정당한가? 아빈이 칼과 샌디, 그리고 리를 죽인 것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프레스틴을 직접 처단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보복 살인이다. 물론 프레스틴이 나쁜 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프레스틴을 죽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그 순간 아빈 역시 악마가 되었을 것이며 그 이후 아빈이 또 다른 악마들과 만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은 어쩌면 신이 그에게 내린 잔인한 형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리를 죽이고 고향을 떠나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는 아빈은 어느 히피족의 차를 얻어 타는데, 차를 얻어 탄 순간 졸음을 느끼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아빈을 태운 히피족이 그 유명한 살인마 찰스 맨슨이라고 한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고, 원작에도 없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정황상 그럴듯한 추론이다. 찰스 맨슨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소재이기도 한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을 벌인 인물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만약 찰스 맨슨이 맞는다면 아빈의 잔인한 형벌은 이제 겨우 시작인 셈이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2시간 18분 동안 인간의 광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섬뜩하고 기분이 나쁘다. 하긴 신에 대한 믿음을 빙자한 인간의 광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이 어리석은 광기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절망감이 더욱 내 마음을 짓눌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톰 홀랜드의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었고,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꽤 강렬한 영화였다.
[판타지 아일랜드] - 누군가의 판타지는 누군가에게 악몽이 될 수도 있다.
감독 : 제프 와드로
주연 : 마이클 페나, 매기 큐, 루시 헤일
코로나19가 미국을 휩쓸면서 미국의 극장가가 일시정지하기 직전인 지난 2월.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을 즐겨 보던 내게 한 편의 공포 영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포 영화의 명가 블럼 하우스에서 제작한 [판타지 아일랜드]인데, 섬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판타지한 섬에서 악몽 같은 사건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물론 내용 자체가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도 내 이목을 끈 것은 마이클 페나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다. [앤트맨]에서 씬스틸러 루이스를 연기한 마이클 페나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코미디 전문 배우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공포 영화의 주연이라니...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판타지 아일랜드]의 국내 개봉은 무산되었고, 그냥 그렇게 내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지난 주말 넷플릭스 최신 영화를 검색하다가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겁이 많아서 공포 영화를 혼자서는 절대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판타지 아일랜드]를 보겠다며 혼자 TV 앞에 앉았다. 다행히 크게 무서운 장면은 없었다. 불에 타서 죽은 유령이 몇 번 깜짝 등장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쯤은... ^^
[판타지 아일랜드]는 어느 여성이 외딴섬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은 전환되고, 환상적인 섬에 초대된 다섯 명의 관광객을 보여준다. 섬의 주인인 로어크(마이클 페나)의 환영 아래 각자 사연이 있는 그들은 뭐든지 원하는 것 한 가지를 이뤄준다는 말에 긴가민가하며 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로 그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실제로 이뤄진 것. 오래전 연인의 청혼을 거절했던 것을 후회하는 그웬(매기 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연인의 청혼을 다시 받게 되고, 전쟁 영웅으로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패트릭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의 한가운데에 선다. 그냥 미녀, 미남들과 신나게 즐기고 싶은 브랙스 형제와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은 멜라니(루시 헤일)까지 자신의 판타지를 즐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즐거워야 할 판타지가 어느 순간부터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 그러면서 지금의 판타지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판타지임이 드러난다. 그의 판타지를 위해 그들은 복수를 당하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판타지 아일랜드'와 로어크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며 그웬 일행은 이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준다면서 어느 순간 판타지를 악몽으로 바꾸어 버리는 섬의 법칙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초호화 저택에서 실컷 즐기던 브랙스 형제를 공격하는 테러 집단의 공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나중에 이 모든 사건이 복수를 위한 함정이라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영화의 짜임새가 헐거워 마지막 반전 또한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판타지 아일랜드]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ABC에서 방영된 동명 시리즈의 영화 버전이라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섬에서의 총격전으로 죽었던 형을 살리고 섬에 남기로 하는 동양인 브랙스의 별명은 타투인데, 타투는 TV 시리즈에서 로어크의 조수인 난쟁이라고 한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TV 시리즈와의 접점을 찾고 속 편을 만들 기틀이 세워진 셈이다. 하지만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는 섬의 법칙을 명확하게 확립하지 않는 한 속 편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 영화처럼 난잡하기만 할 것 같다. 결국 [판타지 아앨린드]는 설정은 좋았는데, 영화의 만듦새가 그 설정을 쫓아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좌초된 격이다.
[에놀라 홈즈] - 오빠보단 천재성은 못하지만, 훨씬 유쾌해서 매력적인 그녀
감독 : 해리 브래드비어
주연 :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샘 클라플린, 헬레나 본햄 카터
지난 주말 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에놀라 홈즈]이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에놀라 홈즈]는 꼭 봐야지.'라고 점찍어 두었다. 이번엔 아내와 아들도 나의 생각에 동조했는데, 온 가족이 영화를 보기 위해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넷플릭스에 접속한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넷플릭스에 매력적인 신작이 많다면 이런 유쾌한 추억이 많아질 텐데...
[에놀라 홈즈]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유도리아 홈즈(헬레나 본햄 커터)와 함께 생활하던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아침 어머니가 감쪽같이 사라졌음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실종 소식을 들은 에놀라의 두 오빠 마이크로프트(샘 클라플린)와 셜록(헨리 카빌)은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셜록의 어머니의 행방을 찾는 동안 마이크로프트는 에놀라를 규율이 엄격한 기숙 학교에 보내려 하고, 이에 에놀라는 집을 나와 직접 어머니를 찾겠다며 런던으로 향한다. 하지만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킬러에게 쫓기는 튜크스베리 자작(루이스 패트리지)를 만나며 예기치 않은 모험을 하게 된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에놀라 홈즈'는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이 역대급 캐릭터를 만든 것은 낸시 스프링거의 추리 소설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낸시 스프링거가 2006년에 발표한 <사라진 후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후에도 <왼손잡이 숙녀>, <기묘한 꽃다발>등 '에놀라 홈즈' 시리즈가 여섯 편이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에놀라 홈즈] 또한 속 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의 속 편이 만들어지는 것을 매우 환영하는 바이다.
솔직히 [에놀라 홈즈]는 뛰어난 추리 영화는 아니다. 에놀라는 어머니의 실종 사건을 쫓는 와중에 튜크스베리 남작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에놀라가 홈즈 가문답게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에놀라의 사건 추리 능력은 그동안 '셜록 홈즈'를 소재로 한 영화, TV 시리즈, 소설과 비교해서 천재적인 면은 부족하다. 그저 에놀라의 능력이라면 어머니와 함께 했던 낱말 조합하기 능력 정도. 튜크스베리 남작 사건도 사실 헛다리를 짚었다가 우연히 해결한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놀라 홈즈]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에놀라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되는데, 그녀의 이름의 알파벳 철자를 거꾸로 조합하면 'ALONE' 혼자라는 뜻이다. 유도리아는 여성이 혼자의 힘으로 사회에서 우뚝 서기 힘든 시대에서 에놀라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설 수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녀가 성인이 된 열여섯 번째 생일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름 그대로 에놀라는 오빠인 셜록의 도움 없이 어머니의 실종 사건과 튜크스베리 남작 사건을 멋들어지게 해결하는데, 그녀의 능력은 천재적인 추리력이 아닌 재기 발랄한 매력이다. 영화에서 걸핏하면 화면을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에놀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물론 에놀라를 연기한 밀리 바비 브라운의 연기력도 톡톡히 한몫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처럼 넷플릭스의 영화가 조금은 묵직하고 어둡거나, 아니면 하이틴 로맨스에 치중된 면이 있다. 물론 그런 영화들도 좋지만 이렇게 [에놀라 홈즈]처럼 가볍고, 화사하며, 통통 튀고 추리극도 가끔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에놀라가 또 어떤 사건들을 해결할지 기대하며 나는 [에놀라 홈즈 2]가 어서 빨리 만들어져 넷플릭스에 공개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