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진실을 쫓는 여자들... [시크릿 옵세션], [시크릿 세탁소], [아무튼, 우리]
지난 주말과 연차 휴가를 낸 월요일 동안 넷플릭스를 통해 본 여덟 편의 영화를 구분해보니 그중 네 편이 주인공이 흑인인 영화였고, 세 편은 진실을 쫓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뭐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들을 보다 보니 이렇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 영화의 여주인공들이 쫓는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시크릿 옵세션] - 이 남자는 내 남편일까? 나를 죽이려는 킬러일까?
감독 : 피터 설리반
주연 : 브렌다 송, 마이크 보겔
비 오는 날 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쫓기고 있다. 칼을 든 남자의 위협에서부터 급하게 도망을 치던 찰나, 교통사고가 나고, 여자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채 도로에 쓰러진다. 곧장 병원으로 이송된 여자의 이름은 제니퍼 윌리엄스(브렌다 송)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그녀를 남편 러셀(마이크 보겔)은 정성껏 간호를 한다. 러셀의 간호로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는 제니퍼. 비록 남편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의 헌신적인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간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제니퍼를 괴롭히고 점점 포악해지는 러셀을 보며 제니퍼는 그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제니퍼의 사고를 조사하던 베테랑 형사 프랭크 페이지(데니스 헤이스버트)는 러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자! [시크릿 옵세션]의 주인공인 제니퍼가 알아내야 할 진실은 러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진짜 남편일까? 아니면 비 오는 날 밤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킬러일까? 제니퍼를 향한 러셀의 정성스러운 간호, 집에 있는 결혼사진들 모두 러셀이 제니퍼의 헌신적인 남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렇다면 그녀를 죽이려했던 킬러는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그녀를 죽이려 한 것일까?
[시크릿 옵세션]은 꽤 흥미로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스릴러 영화이다. 하지만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질문은 영화 중반을 넘기지 못한다. 피터 설리반 감독은 마치 입이 근질거리는 수다쟁이처럼 러셀의 정체를 서둘러 관객 앞에 내보인다. 제니퍼의 사고 목격자를 러셀이 살해하는 장면에서 [시크릿 옵세션]은 더 이상 시크릿하지 않다.
아니,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제니퍼가 교통사고를 당한 날 병원은 신원불명의 여성 환자라고 말한다. 그녀의 소지품에는 그녀를 신원을 증명할만한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러셀이 병원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교통사고가 난 내 아내의 찾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러셀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병원에 왔던 말인가? 신원불명의 여성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병원 관계자는 그 어디에도 없을 텐데... 결국 [시크릿 옵세션]은 '러셀은 제니퍼의 남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관객 앞에 드러내놓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으로 관객을 긴장시키려는 걸까? 딱 1990년 작 [미져리]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폴 쉘던(제임스 칸)의 사생팬인 애니 윌킨스(케시 베이츠)가 폴을 감금해 놓고 벌이는 무시무시한 스토킹을 소재로 한 이 전설적인 영화는 [시크릿 옵세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제니퍼를 남몰래 사랑한다는 이유로 살인도 불사하는 러셀. 영화는 제니퍼가 어떻게 미친 사랑에 빠진 러셀에게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영화이다.
문제는 30년 전 영화인 [미져리]와 비교해서 [시크릿 옵세션]의 짜임새, 공포가 현저하게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제니퍼를 사랑한다면서 그녀의 부모를 죽이고, 그녀마저 죽이려 한 러셀의 행동은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그래놓고 '내 사랑의 보답이 고작 이거야?'라며 화를 내다니... 아무리 미쳤어도 이해가 되게 미쳐야지? 게다가 'I Love You'라는 외침에 동시에 폴의 발목을 부러뜨리던 애니의 무시무시한 외침같이 임팩트가 있는 장면도 없다. 특히 프랭크 형사의 존재 덕분에 안심까지 된다. 뭐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다가는 비밀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조급한 피터 설리반 감독의 연출력에 실망할만한 영화이다.
[시크릿 세탁소] - 내 보험금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간 걸까?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메릴 스트립, 게리 올드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라이트
남편 조셉(제임스 크롬웰)과 함께 여유롭게 황혼의 인생을 즐기고자 했던 엘렌(메릴 스트립). 하지만 그녀의 소망은 남편과 함께 탄 유람선이 뒤집히며 산산조각이 난다. 남편의 죽음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 엘렌. 그런데 선박회사가 가입한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이 되지 않는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보험 회사에 재보험에 재재보험으로 가입되었고, 그렇게 가입된 재재보험 회사는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유령회사이다. 엘렌은 끈질긴 추적 끝에 고객들에게 세금 회피를 위한 수천 개의 유령회사들을 만들어 거액의 수수료를 떼어먹는 사악한 변호사 위르겐 모사크(게리 올드만)와 라몬 폰세카(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정체를 폭로한다.
[시크릿 세탁소]는 무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천재 감독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에린 브로코비치], [오션스 일레븐] 등의 영화를 통해 흥행성도 인정받았다. 아마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이기에 메릴 스트립을 중심으로 게리 올드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초호화 캐스팅이 가능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엔 왕년의 섹시스타 샤론 스톤도 나온다고 한다.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부동산 중개인이 샤론 스톤이었나 보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일단 영화의 전개가 굉장히 독특하다. 모사크와 폰세카가 내레이션을 맡아 관객들에게 돈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물물교환에서 화폐가 등장하고 신용 거래가 가능해진 현대 사회의 복잡한 금융거래에 대한 그들의 현란한 설명을 뒤쫓다 보면 엘렌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보험금이 어쩌다가 엘렌이 아닌 다른 놈들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문제는 나처럼 금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모사크와 폰세카의 설명을 쫓아가는 것이 너무 버겁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두 번은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엘렌의 맹활약으로 금융 사기를 저지르는 변호사 일당을 잡는 단순한 스토리도 아니다. 모사크와 폰세카가 당국에 덜미를 잡힌 것은 내부 자료를 폭로한 고발자가 있기 때문인데 영화는 그 고발자의 정체가 변장을 한 엘린이라고 말한다. 물론 말도 안 된다. 이건 그냥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다시 말해 앨렌은 보통의 우리와 같은 소시민을 의미하며 결국 모사크와 폰세카를 무너뜨린 것은 소시민의 작은 관심 덕분이라는 설명인 듯하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멍했다. '내가 뭘 본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명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현란한 연출력으로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였지만, 엘렌이 타지 못한 남편의 사망보험금과 모사크와 폰세카가 세운 유령 회사들, 그리고 중국의 보시라이 스캔들 등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줘도 이해를 못 하니... 나야말로 훨씬 복잡해진 금융 거래 시대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할 종류의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석기 시절 물물교환이 내겐 더 편할지도... ^^
[아무튼, 우리] - 도대체 내 친아빠는 누구란 말인가?
감독 : 가브리엘라 타글리아비니
주연 : 블랑카 수아레즈, 아마이아 사라망카, 벨린 쿠에스타, 마카레나 가르시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네 자매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오랜만에 한자리에 한다. 이혼 위기에 몰린 가정주부인 첫째, 뉴욕의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둘째, 레즈비언이며 화가인 셋째, 자유 섹스주의자인 넷째까지... 모이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이들은 어머니의 충격적인 유언을 듣게 된다. 지금의 아빠는 너희의 친아빠가 아니며 각자의 아빠가 다르다는 것이다. 직접 자신의 친아빠를 찾아야 유산을 상속해 주겠다는 어머니의 유언에 멘붕에 빠진 네 자매. 이들은 자신의 친아빠를 찾기 위해 장례식에 나타난 여러 아빠 후보들을 만나러 다닌다.
[아무튼, 우리]는 스페인 영화이다. 사실 [시크릿 세탁소]의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이후 영화는 조금 단순한 영화를 보고자 선택한 영화이다. [아무튼, 우리]는 러닝타임이 1시간 18분 밖에 되지 않고, 네 자매의 아빠 찾기라는 무겁지 않은 소재의 영화라서 단순한 영화 찾던 나에게 딱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불임인 남편과 합의하에 자유롭게 여러 남자들과 섹스를 하며 각기 아빠가 다른 네 명의 자매를 낳은 어머니. 아무리 개방적인 스페인이라 할지라도 네 자매에겐 굉장히 충격적인 진실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진실을 통해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함께 친아빠에 대한 진실을 찾아 헤맨 끝에 얻게 되는 자매간의 우애? 아니면 가부장적 사회에 반기를 든 엄마 덕분에 깨닫게 된 삶의 진리?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네 자매는 시각장애 성직자, 자유 섹스주의 누드화가, 빌딩 청소부, 그리고 성 전환자 등을 만나며 누구의 친아빠인지 별 심각하지 않게 농담처럼 짝 찾기를 한다. 그러한 상황에 약간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특히 혼자 친아빠를 찾지 못한 막내가 '나만 아빠가 없어'라며 우는 장면에서는 '도대체 왜 울지?'라는 의문까지 든다. 친아빠를 만나도 그냥 무덤덤하게 별 표정 없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러닝타임이 짧아 영화에 대해 짜증이 날 때쯤 서둘러 끝난다는 것 정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