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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장유정

주연 :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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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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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내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늘 갑자기 회식 약속이 잡혀서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바로 이때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1917]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했는데 아내가 회식으로 늦게 들어오는 이때가 [1917]을 보러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재빨리 메가박스 어플을 켜고 시간대를 확인했더니 6시 25분 영화가 있었다. 6시에 칼퇴근하고, 조금 뛰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둘러 예매를 마치고 곧바로 칼퇴근을 감행했다.

6시 30분에 극장 도착. 영화 시작 전 광고가 10분 정도 하니 딱 맞게 도착한 셈이다. 그런데 상영관에 입장을 하려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내가 예매한 [1917]의 상영관은 8관인데, 내가 도착한 극장에는 5관까지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예매한 극장이 아닌, 습관적으로 자주 가는 집 근처 극장에 간 것이다. 이미 상영 시간이 늦어 예매 취소도 할 수 없고, 이제 와서 예매한 극장으로 택시 타고 간다고 해도 30분 이상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의미가 없다. 순간 나는 멘붕에 빠져 버렸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멘붕에 빠진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집으로 돌아가 치킨에 맥주를 진탕 마시며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왕 극장에 왔으니 다른 영화를 예매하는 것이다. 극장 시간표를 보니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가 [정직한 후보]였다. 영화가 별로 웃기지 않는다는 블로그 이웃의 리뷰가 있었기에 패스하고 넘어가려 했었던 영화인데 당시에는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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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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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4월 15일은 총선일이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더 많은 국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하며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평상시에도 정치권은 참으로 한심했는데 선거일이 다가오면 더욱 한심하다. 어떨 땐 어이없는 코미디를 보는 것만 같을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정치불신, 정치혐오라고 부르던데, 그건 유권자의 잘못이 아니다. 불신과 혐오만 불러일으키는 정치인들의 잘못일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직한 후보]는 정치불신, 정치혐오를 가벼운 코미디로 풀어 놓는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정직한 후보]가 짐 캐리 주연의 1997년 개봉작 [라이어 라이어]를 따라 한 그냥 평범한 코미디 영화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선을 60여 일 앞둔 지금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정치를 풍자한 꽤 의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정직한 후보]를 꽤 재미있게 봤다. 어쩌면 이웃 블로거의 글을 읽은 덕분에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덕분일 수도 있고, 나의 치명적인 실수로 [1917]를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1917]를 보지 못했다는 짜증을 잠시라도 잊고 실컷 웃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집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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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정말 '정직한 후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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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4선을 위한 총선 준비가 한창이다. 그녀는 과거 평생 모은 10억을 기부한 할머니 김옥희(나문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등에 업고 당선이 유력시되었던 남용성(조한철) 후보를 제치고 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승승장구 중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비밀은 있다. 사실 옥희는 멀쩡히 살아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의 이름을 설립한 옥희 문화재단은 김상표(손종학) 대표의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주상숙은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는 부패한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손녀의 모습을 보다 못한 옥희가 하늘에 소원을 빌고, 그 여파로 주상숙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정직한 후보'가 되어 버린다.

물론 이 영화의 내용은 판타지이다. 세상에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아주 희박하지만 있을 수 있지만... 게다가 정치인이 거짓말을 못한다니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정치인은 거짓말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던가. 이건 정치혐오가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정치인 주상숙은 유권자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바라는 판타지가 된다. [정직한 후보]는 총선을 앞두고 관객이 가장 원하는 판타지를 영화에서 실현시킨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주상숙은 당연히 위기를 맞이한다. 며느리로서 시어머니(김용림)와 남편 봉만식(윤경호)에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막말을 퍼붓고, 정치인으로서는 자신의 비리를 거짓 없이 까발린다. 그런데 오히려 지지율이 올라간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직한 주상숙의 모습이 신선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상숙에게는 뇌관이 있다. 바로 옥희 문화재단의 비리. 이것이 터지면 주상순뿐만 아니라 여럿이 다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주상숙의 입은 정치권에서 시한폭탄이 되고, 사퇴 압박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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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의 온상인 그녀에게 호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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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직한 후보]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주상숙이 모습이 딱 내가 원하는 정치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라 할 수 있는 선거가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에는 더욱 간절하다. 언론도 믿을 수 없고, 검찰도 믿을 수 없고, 정치인의 입은 더더욱 믿을 수 없으니 지금의 상황이 더욱 답답하다. 그저 나 스스로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수밖에...

영화를 보며 '만약 내가 영화 속의 유권자라면 주상숙을 뽑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들을 군대 안 보내려고 꼼수를 부리고, 거대 기업으로부터 지역 개발을 빌미로 뇌물을 받아 처먹었고, 청렴한 소시민을 가장하며 이중생활을 하며, 할머니가 죽었다는 거짓말과 옥희 문화재단의 비리에 대한 일정 부분 책임까지 있는 주상숙은 분명 국회가 아닌 감옥에 가야 마땅한 후보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직하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유권자에게 고백을 하고 죄의 대가를 받는다면 어쩌면 나는 그녀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죄를 짓고도 그것을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참 묘한 아이러니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주상숙은 거의 빌런급이다. 그런데 호감이 간다. 그것은 비단 라미란의 코믹 연기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큰 비리가 없지만 오히려 주상숙보다 더 비호감인 남용성 후보, 그리고 존재감이 미비한 신지선(조수향) 후보에 비해 오히려 온갖 비리의 온상인 주상숙에게 더 애정이 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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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즐길만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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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영화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다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웃음의 포인트가 상황보다는 라미란의 찰진 대사에 철저하게 기대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정직한 후보' 라미란의 상황으로 관객을 웃겨야 하는데 [정직한 후보]는 그러지는 못했다. 그것은 코미디 영화로서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사건 해결도 얼렁뚱땅이다. 그저 동영상 하나로 퉁치고 끝내버리기에는 주상숙이 저질러 놓은 비리가 너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녀는 옥희 문화재단 비리로 몇 개월 감옥 생활을 했을 뿐, 2년이 지나 멀쩡하게 서울 시장 후보로 등장한다.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어쩌면 정치인들 중 전과자가 수두룩한 현실을 풍자한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영화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코미디 영화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부류는 아니다. 그냥 적당히 나를 웃겼다면 영화에 허점이 보이더라도 대충 만족하는 부류이다. [정직한 후보]가 그러하다. 상황으로 웃기지 못하고 라미란의 연기로 웃겼다고 하지만 나를 웃기긴 했으니 이 영화에 만족할 수가 있었다. [정직한 후보]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네이버 정치 뉴스를 잠시 읽었다. 그리고 [정직한 후보] 덕분에 좋아졌던 내 기분은 한순간에 다시 나빠졌다. 어쩜 저리도 짜증 나는 인간들 뿐인지... 제발 [정직한 후보]처럼 더도 덜도 말고 딱 일주일만 총선 후보들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기적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