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11시까지 혼자 야근을 해야 했다. 인터넷도 끊기고, 전화도 안 되는 상황, 전선 공사를 하는 분들 틈에서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엿 같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프랜시스 하딩의 장편 소설 <거짓말을 먹는 나무> 덕분에 이 지루한 시간을 그럭저럭 버틸 수가 있었다. 문제는 토요일이었다. 전선 공사는 토요일에도 계속되었는데, 내가 아무리 책 읽는 속도가 느려도 오전 중에 <거짓말을 먹는 나무>의 마지막 페이지가 내 손에서 떠났다. 이제 이 엿 같은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은 다 읽었지만 영화가 있지 않은가? 사실 이때를 대비해서 전날 [좀비랜드 : 더블 탭]을 미리 내 핸드폰에 다운로드해 놓았다. 문제는 영화 한 편만 보면 작업이 끝나서 퇴근할 줄 알았는데 작업이 토요일 밤 9시까지 지속되는 바람에 영화를 무려 두 편이나 더 봐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데드 돈 다이]였다. 어쩌다 보니 겁 많은 쫄보가 좀비 영화를 연달아 두 편이나 본 셈이다. 사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무실에 전선 공사하시는 분들이 많아 공포 영화를 봐도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좀비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니 전선 공사하시는 분들이 갑자기 좀비로 변해서 나를 공격할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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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루벤 플레셔

주연 : 우디 해럴슨, 제시 아이젠버그, 엠마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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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랜드 : 더블 탭]은 무려 10년 전에 만들어진 2009년작 [좀비랜드]의 속 편이다. [좀비랜드]는 공포 영화의 소재인 좀비를 코믹 액션으로 탈바꿈시킨 영화로 개봉 당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이다. 물론 나는 보지 못했다. [좀비랜드]도 못 본 주제에 [좀비랜드 : 더블 탭]에 도전한 이유는 우디 해럴슨, 제시 아이젠버그, 엠마 스톤이라는 화려한 캐스팅과 [베놈]을 연출한 루벤 플레셔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영화는 좀비로 세상이 망한지 1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상이 망했다고 한다면 굉장히 암울하고 무서운 상황이 펼쳐질 것 같은데, 오히려 영화 속의 사람들은 이 망한 세상에 적응을 하며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특히 전 편인 [좀비랜드]에서 우연히 만나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 탤러해시(우디 해럴슨), 위치타(엠마 스톤), 리틀룩(아비게일 브레스린)은 백악관에 터전을 잡고 신나는 인생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위치타와 리틀룩이 집(?)을 나간 것이다. 리틀톡의 가출 이유는 탤러해시의 과잉보호, 위치타의 가출 이유는 콜럼버스의 부담스러운 청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탤러해시와 콜럼버스는 그녀들의 가출에 적응하며 또다시 삶을 이어가던 중 위치타가 집으로 돌아온다. 리틀룩이 위기에 빠진 것. 한층 진화된 좀비인 T-800([터미네이터]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탤러해시, 콜럼버스, 위치타는 이 위험한 세상에서 평화를 외치는 바보 같은 인간의 도시 바빌론에 있는 리틀룩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솔직히 좀비 영화이긴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몇몇 섬뜩한 장면이 있긴 하지만 무서울만하면 탤러해시 일당이 좀비들을 박살 내버리니 무서울 틈이 없다. 그 대신 [좀비랜드 : 더블 탭]은 개성 강한 캐릭터의 재미로 영화를 채운다. 기존의 매력 덩어리 4인방은 물론이고, 새로운 캐릭터인 매디슨(조이 도이치), 네바다(로사리오 도슨), 앨버커키(루크 윌슨) 등의 매력이 상당하다.

나는 그중에서 매디슨이 가장 인상 깊었다. 좀비 때문에 망한 세상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금발의 백치미가 돋보이는 이 캐릭터는 콜럼버스와 위치타의 사이에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만들어 놓더니 영화 중반부에는 견과류 알레르기로 깜짝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좀비 영화에서 백치미 넘치는 금발 미녀의 활약이라니... 이렇듯 [좀비랜드 : 더블 탭]은 예상 밖의 재미로 가득하다. 그동안 봤던 좀비 영화 중에서 가장 유쾌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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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짐 자무쉬

주연 : 아담 드라이버,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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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랜드 : 더블 탭]을 본 후 곧바로 [데드 돈 다이]를 본 이유는 [좀비랜드 : 더블 탭]의 쿠키 영상에서 빌 머레이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빌 머레이는 '가필드 3'의 기자회견 현장이 좀비에게 습격을 당하자 시크한 표정으로 좀비를 물리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빌 머레이가 출연한 좀비 영화가 이 영화 말고도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데드 돈 다이]가 떠오른 것이다.

[데드 돈 다이]는 [좀비랜드 : 더블 탭]과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고는 둘 다 좀비 영화라는 것과 빌 머레이가 나온다는 것뿐이다. [데드 돈 다이]의 내용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좀비가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일단 좀비 창궐의 이유도 설명된다. 극지방에 매립되어 있는 에너지를 채취하기 위해 시추 작업이 진행되고, 이로 인하여 지구의 자전축이 바뀌면서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영화는 고전 공포 영화의 수법을 이용한다. 평화로운 마을,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불길한 조짐, 영화는 좀비를 좀처럼 관객 앞에 내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좀비가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하는 것은 영화의 절반이 훌쩍 지난 후이다. 영화 처음부터 좀비를 내세운 [좀비랜드 : 더블 탭]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방식이다. 게다가 좀비 역시 고전적이다. [좀비랜드 : 더블 탭]에서는 닌자 좀비, T-800 좀비 등 다양한 변종 좀비가 등장시키지만, [데드 돈 다이]의 좀비는 떼를 지어 어그적 걷는 초창기의 좀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드 돈 다이]가 고전적인 좀비 영화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마을의 기묘한 장의사 젤다 윈스턴(틸다 스윈튼)의 존재가 그러하다. 뭔가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그녀의 정체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설정이라 짐 자무쉬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의도는 모르겠다.)

마을의 경찰관 로니 피터슨(아담 드라이버)은 스타워즈 키링을 가지고 다니고(그는 '스타워즈의 벤 솔로이다.) 툭하면 '끝이 안 좋겠는데...'라며 영화의 스포를 한다. 동료 경찰인 클리프 로버트슨(빌 머레이)이 그게 무슨 의미냐고 화를 내자 태연하게 영화의 시나리오를 끝까지 읽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클리프는 감독이 자신에겐 쪽 대본만 줬다며 투덜거린다.

영화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것만 같았던 조(셀레나 고메즈)가 별 활약 없이 시체로 발견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좀비 소동을 숲속에서 지켜보던 은둔자는 이 모든 것이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자본주의의 욕심 때문이라며 영화의 주제를 대놓고 떠든다. 이처럼 [데드 돈 다이]는 고전적 좀비 영화처럼 시작했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비꼬아 버리는 독특한 영화였다. 어쩌면 그 독특함은 [좀비랜드 : 더블 탭]보다 강한 듯... 대신 영화적 재미는 아무래도 대놓고 좀비 오락 영화를 표방하는 [좀비랜드 : 더블 탭]보다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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