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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라이언 존슨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 아나 디 아르마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크리스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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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 덩어리임을 미리 경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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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모던 추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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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토요일이지만 아들은 기말고사 준비를 한다며 열공 모드이다. 아들은 공부해야 하니 놀자고 꼬시지 말라고 아내는 내게 경고를 날린다. 내가 주말이 되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들과 놀지도 못한다니 왜 고등학생은 이리도 시험을 자주 보는 것인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아내는 슬그머니 '대신 내가 놀아줄게.'라며 영화를 보러 가자고 청한다. 그래, 꿩 대신 닭이라고 하지 않던가. 원래 아들과 함께 보려고 벼르던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그리하여 아내와 함께 보게 되었다. 아들 미안...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의 상영관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단다.

[나이브스 아웃]은 일단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끄는 영화이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마지막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크리스 에반스가 백만장자의 망나니 손자 랜섬으로 출연한다는 것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그 외에 조만간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만나게 될 다니엘 크레이그와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진 명단에 빼곡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기대요소는 따로 있다. 북미 개봉 당시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도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한 스릴러적 완성도이다. 영화의 기본 내용은 백만장자인 미스터리 작가 할런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죽은 채 발견되고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가 사건을 맡으면서 할런 트롬비의 유산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내용만 들어도 설렌다. 마치 라이언 존슨 감독이 내게 추리 게임을 제안한 것처럼... 까짓것 도전을 받아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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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내막을 미리 밝히고 시작하는 추리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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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날 숨진 채 발견된다. 사건 현장만 본다면 이견의 여지가 없이 자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군가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거액의 돈과 함께 할런 트롬비 사망 사건을 익명으로 수사 의뢰를 한 것이다. 브누아 블랑은 할런 트롬비 사망 당시 집에 있었던 가족들을 모두 저택으로 불러 모으고 당시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본다. 그 결과 이 사건의 키를 할런 트롬비의 간병인인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가 쥐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르타 카브레라는 참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거짓말을 못한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역류성 구토를 하기 때문이다. 브누아 입장에서는 노다지를 만난 셈이다. 마르타는 할런과 가장 가까운 사이로 할런과 그의 가족 간의 내막을 모두 알고 있고 게다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이쯤 되면 사건 해결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심봤다'를 외치려는 순간 [나이브스 아웃]은 할런의 죽음에 대한 내막을 관객에게 상세하게 보여준다. 마르타가 실수로 모르핀을 100mg이나 주사하는 바람에 할런은 10분 안에 죽을 처지였고, 마르타를 끔찍이도 아꼈던 할런은 마르타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자살로 꾸몄던 것이다. 그렇다.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라고 하더라도 어찌 되었건 범인은 마르타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엔 더 이상 추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뭐지? 기껏 추리 게임을 제안해 놓고 영화의 초반에 범인을 관객 앞에 공개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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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꿍꿍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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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는 할런이 시키는 대로 밤 12시에 퇴근을 했고, 뒷길로 다시 돌아와 할런인척 연기를 했다. 그로 인하여 마르타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브누아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마르타는 점점 궁지에 몰린다. 거짓말에 서툰 마르타는 온갖 증거를 흘리고 다녔고, 그러한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브누아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녀는 할런의 죽음으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는 유일한 용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되며 상황은 180도로 바뀐다. 할런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족들이 아닌 마르타에게 남겨준 것이다. 할런은 자신의 돈 때문에 가족들이 자립을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이제라도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유산을 단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마르타가 브누아의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할런의 죽음이 아무런 마르타에게 아무런 이득을 안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할런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마르타가 된다. 할런의 가족들은 모두 마르타 역시 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인하여 패닉 상태가 되고 만다.

이때 마르타에게 접근하는 이가 있었으니 할런의 손자인 랜섬(크리스 에반스)이다. 그는 사건 당일 할런과 다투고 일찍 자리를 떴다. 하지만 사건 당일 마르타가 몰래 퇴근했다가 저택에 잠입할 수 있었기에 랜섬도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 그를 완전히 용의 선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게다가 랜섬을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아니던가. 내 지론에 의하면 범인은 가장 유명한 배우가 맡은 캐릭터이다. 물론 그 사실 하나만으로 랜섬을 의심할 수는 없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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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반전은 마르타의 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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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내막은 안다. 마르타가 실수로 할런에게 모르핀을 과다 투약했고, 마르타를 위해 할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내막은 바뀔 수가 없다. 바뀐다면 이것이야말로 반칙이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도 있다. 가족들 중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망나니 랜섬이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되자 마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마르타에게 접근하는 것만 봐도 랜섬이 가장 의심스럽다. 사건의 내막과 유력한 용의자까지 안다면 다 끝난 게임이 아닌가? 그런데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그렇지 않다. 브누아가 실토했듯이 이 사건은 가운데 구멍이 조그맣게 뚫려버린 도넛 같다.

그때 마르타에게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라는 협박 편지가 도착하며 사건은 또다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소용돌이친다. 협박 편지를 보낸 이는 할런의 저택 가정부인 프랜. 그녀는 경찰에서 진행한 할런의 혈액 검사 보고서를 입수했다. 만약 이 보고서가 공개된다면 할런의 죽음이 모르핀 과다 투약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며 마르타의 범행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프랜과의 접선 장소에 도착한 마르타는 그러나 이미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해 죽어가는 프랜을 발견한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검시소 방화 사건으로 할런의 혈액 검사 보고서는 이제 영영 사라졌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자신의 범행을 증명할 유일한 증거는 사라졌다. 그리고 프랜의 죽음과 동시에 유일한 목격자 또한 사라질 것이다. 프랜만 죽으면 할런이 남긴 거액의 유산은 내 차지가 될 것이며, 자신의 실수로 인한 할런의 죽음까지 덮을 수가 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이 순간 주저할 것이다. 하지만 마르타는 프랜을 살리기 위해 911에 신고를 했고, 브누아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 그리고 마르타의 그러한 선한 결정은 오히려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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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토마토 97%가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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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차지하기 위한 랜섬의 음모(그럴 줄 알았다)가 밝혀지고, 모든 사건을 해결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할런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을 벌인 살인마를 잡아내겠다고 벼르며 영화를 보던 나는 계속된 예상외의 진행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마르타의 선함이 결정적인 반전이 되는 묘한 결말과 마주하게 되었다. 뭐랄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스릴러 영화를 이렇게도 만들 수가 있구나.

[나이브스 아웃]은 영화의 신선함을 점수로 매기는 로튼토마토에서 97%라는 어마어마한 신선도 점수를 받았다. 워낙에 많은 영화들이 쏟아지듯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로튼토마토는 어느덧 영화를 선택하는데 필요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나니 로튼토마토 점수가 꽤 신뢰할만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에게도 [나이브스 아웃]의 신선도는 100%를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으니까.

토요일 밤, 추워 죽겠는데 꼭 극장에 가야 하냐며 투덜거렸던 아내도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나오며 '재미있었어.'라며 짧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내는 '아들도 이 영화는 좋아할 텐데...'라며 누가 아들 바보 아니랄까 봐 시험공부를 하느라 함께 극장에 오지 못한 아들에게 미안해했다. 그래서 아들의 시험이 끝나면 [나이브스 아웃]을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이 영화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되는 영화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