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독 : 구스 반 산트

주연 : 호아킨 피닉스, 조나 힐, 루니 마라, 잭 블랙

​

​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날들

​

​

IMF가 대한민국을 휩쓸던 당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고성장을 거듭하던 대한민국에 급브레이크가 걸렸고, 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준비가 되지 않았던 서민들은 모두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하고 공공 근로를 해야 했던 나는 '고작 이것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하루가 괴로웠고, 결국엔 모든 것을 무능한 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 위로를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공 근로 현장에서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는 나보다 더 큰 상실감에 빠져 있었는데, 나는 그런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IMF로 인하여 우리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으니 우린 아직 희망을 잃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냥 후배 앞에서 멋있게 보이고 싶었던 것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충고는 후배가 아닌 내게 되돌아왔다. 거리엔 노숙자가 넘쳐났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당시, 잠잘 집이 있고, 빚도 없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는 나는 최소한 그들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기 연민의 늪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 [돈 워리]를 봤다면 나는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돈 워리]는 사고로 전신마비 신세인 존 캘러핸(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의 상처가 깊었고, 그로 인하여 열세 살부터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덱스터(잭 블랙)의 음주운전으로 전신마비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한가. 하지만 그는 자기 연민을 극복했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모든 사람들을 용서했다. 그 결과 그는 행복해졌다. [돈 워리]는 존 캘러핸이 행복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

​

​

첫 번째 단계,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기

​

​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어 보였다. 알코올 중독에 전신마비라니, 이보다 최악이 있겠는가? 정부 보조금과 간병인의 도움이 없다면 술병 따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존. 어쩌면 그의 인생은 그대로 하수구 속에 처박혀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엿 같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중독자 모임에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도니(조나 힐)를 만나게 된다.

도니의 집에서의 첫 모임. 존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어머니에 대한 세 가지, 아니 네 가지 기억은 그를 자기 연민에 빠뜨렸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모임의 사람들은 그의 신세를 듣고도 별거 아니라는 반응이다. 존은 분노에 빠진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고아가 별거 아니라니... 분노하는 존에게 옆에 앉은 여성은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암에 걸린 환자라고...

암에 걸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당연히 술에 의존하며 자포자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알코올 중독 모임에 나왔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에 비한다면 존의 상황은 훨씬 나은 편이다. 그는 전신마비이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존은 깨닫는다. 자기 연민은 자신을 위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존은 행복을 위해 첫걸음을 뗀 것이다.

​

​

​

두 번째 단계, 남 탓하지 말고 용서하기

​

​

도니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존. 하지만 그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마음속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양부모,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자신을 전신마비로 만든 덱스터와 지금 현재 그를 힘들게 하는 장애인 협회 직원 그리고 간병인까지... 그는 그들을 모두 미워하고 증오한다.

하지만 도니의 한마디로 깨닫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덱스터의 경우를 보자. 덱스터의 음주운전으로 존은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런데 술을 마신 덱스터의 차에 오른 것은 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덱스터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그를 강제로 차에 태운 것도 아니다. 결국 전신마비 사고는 덱스터만의 잘못이 아닌 존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존은 도니의 충고대로 그동안 자신이 증오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자신도 스스로 그들을 용서한다. 특히 덱스터를 용서하는 장면은 [돈 워리]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이기도 하다. 덱스터는 사고 후 존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두려웠다고 한다. 그는 존에게서 도망을 쳤고, 그 시간 동안 스스로 자책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이렇게 남 탓하지 않고 용서를 하고 나니 존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이제 그는 행복을 위해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

​

​

세 번째 단계,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기

​

​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특별한 일은 1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다. 그렇다면 특별하지 않은 남은 일상은 불행해야만 할까? 평범한 일상이 불행하다면 인생은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존은 전신마비로 간병인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일상을 불행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가 그린 풍자만화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때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진정 행복을 찾게 된다. 그러한 자신감 속에 병원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아누(루니 마라)와의 사랑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존 캘러핸은 실존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넘어 풍자만화를 그리며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마지막 그의 사진은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의 사정은 훨씬 낫다.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알코올 중독의 수렁에 빠지지도 않았으니까... 영화의 원제는 존 캘러핸의 자서전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이다. 직역을 하자면 '걱정 말아요. 걸어서는 멀리 못 갈 거예요.'이다. 뭐 우리나라의 개봉 제목인 '돈 워리'도 나쁘지는 않다. 걸어서 멀리 가지 못한 그도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우리는 그보다 행복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셈이다. '걱정 말아요.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요.'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관객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