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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 나의 귀차니즘을 날려버린 극대화된 장르적 쾌감.
12  쭈니 2019.05.22 11:45:48
조회 64 댓글 0 신고

감독 : 이원태

주연 : 마동석, 김무열, 김성규

귀차니즘을 이겨낼 만큼 매력적이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나는 귀차니즘에 사로잡힌다. 평상시에는 '영화는 나의 비타민'을 외치며 아무리 피곤한 하루를 위한 피로회복제로 영화를 선택하곤 했는데, 귀차니즘에 사로 집히고 나면 영화고 뭐고 다 필요 없이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널브러져 TV 리모컨을 집은 손가락만 까닥거린다. 그러한 귀차니즘은 봄 환절기가 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지속된다.

올해 귀차니즘은 특히 심했다. 중년 갱년기 증상까지 겹쳐서 짜증까지 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짜증까지 치밀어 오르니 정말 못 참겠더라. 억지로 소설책을 읽어도 '뭐 이따위로 글을 썼어?'라며 작가에게 화가 났고, TV 예능은 그냥 한심하게만 보이고, 집에서 영화 보는 것도 귀찮기만 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악인전]이다.

사실 귀차니즘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번 주 개봉작 중에서 [악인전]과 [배심원들]을 극장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에 두 영화 모두 보질 못했으니 극장 개봉이 마무리되고 다운로드 서비스가 시작되는 6월 이후에나 [악인전]과 [배심원들]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악인전]의 흥행 성적이 예상보다 좋은 것을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너무너무 귀찮지만 [악인전]을 예매했다. 월요일에 예매했다가 극장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서 취소하고, 화요일에 다시 예매했다가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취소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귀차니즘을 이겼다. [악인전]을 계기로 올해의 귀차니즘은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마동석의 액션은 언제나 시원시원하다.

아마도 내 호기심을 잡아끈 영화가 [악인전]이 아닌 [배심원들]이었다면 나는 결국 귀차니즘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귀차니즘에 빠져 있을 땐, 머리를 써야 하는 영화, 우울한 소재의 영화 등은 피해야 하는데, [배심원들]과 이번 주에 개봉하는 [어린 의뢰인]이 딱 그런 영화이다. 그와는 달리 [악인전]은 귀차니즘을 깨부수는데 특화된 액션 영화이다. 특히 터져버릴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마동석의 액션은 역시나 시원시원했다.

장동수(마동석)의 첫 등장 장면, 샌드백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근육질의 장동수는 마치 내 귀차니즘을 내리치는 것처럼 짜릿했다. 물론 그 샌드백 안에는 라이벌 조직의 조직원이 들어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그를 보며 장동수는 차갑게 '돌려보내라'라고 명령한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이 장면은 마동석이 이원태 감독에게 직접 요청한 장면이라고 한다.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어느 액션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이 있었는데, 어느 영화인지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마동석은 장동수에 대한 캐릭터 이해도가 높고, 관객이 자신에게 어떤 부분을 기대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음을 뜻한다.

이후에도 마동석의 액션은 [악인전]의 재미를 거의 책임진다. 라이벌 조직의 조직원의 이빨을 뽑아버리는 장면, 연쇄 살인마 강경호(김성규)와의 육탄전, 그리고 연장을 들고 습격한 수십 명의 조폭들을 맨손으로 때려 눕히는 장면까지... 후반부 장동수가 강경호를 붙잡아 묶어놓고 때리는 장면에서는 속이 다 시원하다. 마치 능글맞게 웃고 있는 강경호가 나를 괴롭히는 귀차니즘인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형사물과 조폭물의 완벽한 조합

[악인전]은 확실히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연쇄 살인마를 뒤쫓는 형사물은 흔한 소재이고, 조폭 간의 세력 다툼 역시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원태 감독이 이 두 가지를 섞었고, 섞어 놓으며 새로워 보인다. 형사물과 조폭물,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특히 조폭물의 경우는 조폭 코미디에서부터 시작해 진화된 장르로 조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형사물과 공존하기는 힘든 장르이다. 형사물에서 조폭은 빌런일 뿐이고, 조폭물에서 형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과연 물과 기름같이 이 두 장르를 어떻게 섞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절대악을 내세우면 된다. 분명 조폭도 악이지만, 조폭보다 더한 악을 내세우면 형사와 조폭의 공조가 어색해지지 않는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강경호라는 캐릭터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강경호에게 다른 캐릭터 성격을 부여하지 않고 그저 악랄한 연쇄 살인마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가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는 짧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강경호의 살인 행각을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후반부 어린 여고생을 살해한 강경호의 모습을 통해 관객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데 치중한다.

강력반 형사인 정태석(김무열)은 장동수와 손을 잡는다. 경찰이 조폭과 손을 잡는다고? 이게 만약 현실 뉴스에 나온다면 그 경찰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잔악무도한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면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이원태 감독은 이렇게 영리하게 형사물과 조폭물을 완벽하게 섞어 놓는다.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된다.

[악인전]은 형사물이긴 하지만 관객이 머리 아프게 추리를 할 필요가 없다.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고, 얄팍한 반전 따위도 없다. 그저 연쇄 살인마 강경호를 잡기 위해 우직하게 앞으로 달렬 뿐이다. [악인전]은 조폭물이긴 하지만 그동안 조폭물에서 문제가 되었던 범죄 미화에 비껴 나가 있다. 장동수는 명백하게 흉악한 범죄자이고, [악인전]은 그러한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단지 장동수보다 더 악독한 연쇄 살인마 강경호를 내세워 관객으로 하여금 장동수를 응원하게 만들 뿐이다.

[악인전]을 보고 나니 이렇게 노련하게 형사물과 조폭물을 아우르는 이원태 감독이 궁금해졌다. 이원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감독 데뷔작이 [대장 김창수]이다. 1896년 황해도에서 일본인을 죽이고 채포된 청년 김창수(조진웅)가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에게 글을 가르쳐준다는 내용으로 천하고 평범한 청년 김창수가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대장 김창수]는 장르적으로 그다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억지로 웃음을 끼워 넣으려 함으로써 웃음도 감동도 부족한 어정쩡한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장 김창수]의 실패 덕분이었을까? [악인전]은 장르적 쾌감을 위해 억지로 무언가를 끼워 넣으려 하지 않는다. 형사와 조폭의 회식 장면에서 술잔을 든 정태석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려다가 '고개 돌려 술 마시려던 것이 아니야.'라고 항변하는 코믹한 장면조차 자연스럽다. 덩치가 산만한 장동수 옆에 앉으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될 테니까.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악인전]의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마지막 결말은 정말 완벽하다.

내가 [악인전]에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울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완벽한 결말 덕분이다. 비록 장동수와 정태석이 손을 잡았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은 다르다. 장동수는 강경호를 잡아 죽임으로써 조직 보스로서의 체면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고, 정태석은 강경호를 잡아 재판에 넘김으로써 범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졌기에 장동수와 정태석은 마지막에 강경호를 손에 넣는 쪽이 마음대로 하기로 서로 약속한다.

강경호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정태석이 말할 때 장동수는 묻는다. 겨우 그거냐고... 강경호가 만약 사형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사형 제도가 폐지된 우리나라에서는 감옥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편안하게 삼시 세끼 챙겨 먹으며 편안하게 살 것이 아니냐고... 그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장동수가 강경호를 잡아 묶어 놓고 주먹을 휘두를 때 쾌감을 느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선량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강경호가 장동수에게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경호는 어서 죽여보라고 장동수를 비웃을 뿐이다. 네가 나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며... 그 장면은 진심으로 소름 끼쳤다.

결국 [악인전]은 강경호의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 그리고 강경호를 심판하기 위해 정태석과 장동수는 마지막으로 공조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강경호와 다시 만난 장동수의 회심의 미소는 그렇기에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했다. 죽음보다 더 큰 공포는 너무 괴로워 죽고 싶어도 결코 죽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이 결말을 통해 이원태 감독은 형사물로서의 결말과 조폭물로서의 결말을 동시에 완성한 셈이다. [악인전]은 칸 국제영화제에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고,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충분히 그러한 성공을 누릴만한 영화였다. 덕분에 지긋지긋한 귀차니즘까지 날려 버렸으니 내겐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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