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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박누리

주연 :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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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성공은 곧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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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누군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는 그만큼 조금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서로 '돈'을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학교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한 교두보가 되고, 사회에 나와서는 서로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인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원리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정말 '돈'이 인생의 목표이어야만 할까? 나는 인생의 목표는 '돈'이 아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돈'이 많다면 행복해질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에 사람들은 '돈'에 매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내가 다닌 직장 중에서 가장 많은 '돈'과 복지를 내게 안겨준 회사가 있었다. 연말이면 최소 500만 원에서 2천만 원까지 성과급을 줬고, 내 병원비 100%, 가족 병원비 70%와 1년 외식비 50만 원이 지원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에 다니는 내내 상사의 폭언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불행했고, 결국 아내와 상의 후 사표를 쓴 후에야 예전의 소박한 행복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돈]이라는 아주 심플한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오직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의 이야기이다. 빽도, 줄도 없는 풋내기 주식 브로커였던 그가 신화적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 큰돈을 만지게 되지만, 결국 금융감독원 한지철(조우진)의 추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는 조금은 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의 연기가 뛰어나,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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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었던 조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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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일현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부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동명 증권에 입사한 일현.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외모, 스펙, 집안 환경까지 완벽한 입사 동기 전우성(김재영)에게서부터 기가 죽는데, 회사 중앙 전광판엔 실적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입사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일현의 실적은 0원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첫 거래에서 실수를 저질러 동료들에게 수천만 원의 손해까지 끼치며 일현은 좌절에 빠진다. 그때 동명 증권의 에이스 유민준(김민재) 과장이 일현에게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를 소개해준 것이다.

번호표와 만나 그의 작전에 동참하게 된 일현은 그 순간부터 승승장구한다. 일현이 해야 할 일이라곤 별것 없다. 그저 번호표가 시키는 대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 그 대가로 수억 원의 '돈'이 입금되고, 그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180도로 바뀌니 일현 입장에서는 이 달콤한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금융감독원 한지철이 번호표를 잡기 위해 일현을 집요하게 압박하지만, '돈'에 의한 달콤함이 너무 강하기에 일현은 번호표와 함께 계속해서 불법적인 거래에 관여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박누리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일현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이끈다. 솔직히 내가 일현이더라도 번호표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불법적인 거래라고 하지만 일현이 하는 일이라고는 주식을 사고파는 일반적인 업무뿐이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번호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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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니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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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덕분에 동명 증권의 에이스가 된 일현. 그 덕분에 그는 많은 것을 누리게 된다. 평소 동경하던 회사 선배 박시은(원진아) 대리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전세보증금만 수억 원이라는 여의도의 고급 아파트에 살게 되었으며, 복분자 농장을 하는 아버지의 간암 병원비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해외 비자금 은행에서 자신의 돈을 확인한 일현의 함박웃음은 '돈'의 위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정말 행복할까? 6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시은과 사귀게 되지만, 시은은 일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간암에 걸린 아버지의 병환은 깊어만 지고, 지철의 끈질긴 압박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과도 같다. 게다가 일현이 번호표의 작전에 깊이 관여하면 할수록 그의 신변은 점점 위험해진다. 이미 번호표와 함께 일했던 몇몇 증권 브로커가 의문의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을 했다는 점이 일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쯤 해서 번호표의 불법적인 거래에서 발을 빼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일현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일현의 상황은 너무 뻔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순박한 청년이 한순간의 유혹에 빠져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고 원하던 부자가 되지만, 그로 인하여 위험에 빠진다는 전개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 아니던가. 결국 [돈]은 내가 예상했던 것 그대로 진행될 뿐이다. 번호표에 대한 일현의 반격 수단과 결말까지,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며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만큼 [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적 재미를 꾸준히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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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사람이 다쳐야 문제를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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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서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번호표에 대한 일현의 반격 이유이다. 지철이 일현을 그토록 회유하고 협박해도 '돈'의 맛을 알아버린 일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일현에게 전화를 한 후 자살한 증권 브로커 사건을 대했을 때도 일현은 애써 외면한다. 왜냐하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번호표의 불법 거래 때문에 망한 회사도, 그로인하여 죽은 사람도, 일현이 모르는 사람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현은 '내 잘못이 아니야.'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외면한다. 그게 편하다.

하지만 한때 직장 동료였던 유민준 과장이 사고를 당하고, 번호표의 다음 목표가 일현과 호형호제하는 입사 동기 우성의 아버지 회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번호표에 대한 일현의 반격이 시작된다. 일현의 주변 사람들이 다침으로써 일현에게 있어서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다. 맞다. 사람이란 동물이 원래 그렇다. 일현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일현의 반격을 응원하다가 문득 일현이 조금만 더 일찍 번호표에게 반격을 했다면 더 많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꼈다.

일현은 번호표에게 묻는다. 평생을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이 많으면서 왜 위험한 일을 계속하느냐고... 그건 내가 권력형 비리 사건 뉴스를 보며 하고 싶었던 말이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왜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긁어모으는 걸까? 번호표는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한다. 현실의 그들도 그냥 그 이유뿐일까? '일한 만큼만 벌어.'라는 지철의 외침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들이 많은 '돈'을 불법적으로 가져가는 만큼 열심히 일한 누군가는 '돈'을 빼앗기는 것이니까. [돈]은 분명 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일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