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가 <비밀의 숲>이었다. 내용이 상당히 치밀하고 무엇인가 나올 듯 나오지 않으면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았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호평도 많이 받았고 시청자들도 열광을 했을 정도다. 이런 드라마라면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가 <라이프>다. 처음에 볼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그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작이 검찰에 대한 부조리를 말했다면 이번에는 영리 병원을 포함한 의료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국대 병원은 갑자기 대기업인 화정이 인수한다. 대기업은 의료라는 부분보다는 서비스라는 부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다. 이에 사장으로 구승효(조승우)가 투입된다. 기득권(?)인 의사들은 의료 체계와 현실을 무시한 사장의 일방적인 일처리에 불만을 갖고 뭉친다. 여기서 병원 내부 문제도 상당히 산재해서 해결하기 힘들다.

병원 의사들끼리도 파벌이 있고 각자 생각이 다르다. 또한 원장이 되기 위한 여러 투쟁(?)도 펼쳐진다. 드라마는 병원을 소재로 할 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의사들의 의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극의 소재가 병원이라 관련된 의료관련 일을 보여주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병원의 행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를 근거로 현재 한국 병원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알려준다. 다양하게 쌓여있는 이 부분을  쉽게 폴어내긴 힘들어 보인다.

내용은 내가 병원 관련 일을 모르니 어디까지 사실인지 여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럴싸하다는 거다. 드라마에서 나온 내용이 완전히 허구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제작진이 상당히 디테일하게 조사를 하고 내용을 전개한 걸로 보인다. 대형 병원일수록 돈이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라는 특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돈이 안 된다고 없애긴 힘들다. 이 부분은 국가에서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한다.

반대로 병원이 영리 행위를 해서 번 돈으로 그런 부분에 쓰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문제다. 안 쓴다면 병원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어차피 욕을 먹을 것 같으면 차라리 돈이 되지 않는 영역을 폐쇄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병원 내에 그런 과가 없으니 굳이 잘 버는 과에서 안 버는 과를 돕는다는 인식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떻게 벌어지고  생각하는지 난 모른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나온 내용은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완전히 함께 하는 제작진이 이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전작에 출연했던 다수의 배우가 이번에도 출연했다. 그 작품 이후로 이제는 이름도 알려진 배우도 있다. 몰랐는데 보다보니 전작인 <비밀의 숲>에 나왔던 배우가 곳곳에서 출연한 걸 깨달았다. 워낙 많은 배우가 출연하다보니 구분하기 힘들수도 있는데 한 명, 한 명을 전부 나름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부여하니 더욱 드라마가 탄탄했다.

그 어떤 배우도 허수룩하거나 쉬워가는 페이지가 없었다. 한국 드라마가 갖고 있는 기승전 로맨스도 없었다. 로맨스 부분이 없었다고 말 하기는 힘들지만 그 정도는 인간이 살아가는 어느 사회나 다 생기는 정도였다. 이러니 드라마는 지루하지 않고 내용이 늘어지지도 않았다. 한국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좀 길다보니 내용이 늘어지고 필요없는 부분이 많이 포함되기 마련인데 그런 장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다.

아마도 드라마를 본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부분이지 않았을까. 더구나 결코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대기업의 횡포에 극복하고 어딘지 모르게 해피엔딩으로 통쾌한 감정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라이프>는 그렇지 않았다. 대기업이 결국에는 승자가 된 듯하다. 대사로도 나온다. 어떤 걸 해도 대기업은 결국 승자가 된다. 그저 잠시 참거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드라마에서 사장인 구승효는 테두리 안에서 노력하는 걸로 보였다.

워낙 다양한 배우가 나와 잘 했지만 그 중에서도 화정그룹 회장 역할을 한 정문성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극이 갈수록 대기업 회장역할을 아주 잘 했다. 배우가 역할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 이런 놀라움은 유재명이 전작에서 보여줬다. 그로인해 유재명은 이제 탄탄히 배우로 인정받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걸 알 수 있다.

드라마 막판에 나름 영리 병원과 관련되어 대안을 제시한다. 그게 가능한지 여부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거기에 의사들이 모여 논의를 할 때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늘 병원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는 대사도 참 인상적이었다. 모여서 환자보다는 병원 경영에 대해서 서로 논하고 관심있어 하는 모습은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과 기관은 돈을 벌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알려주는 드라마다. 

그나저나 JTBC도 이제 9시에 드라마를 하다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