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정장 코너에서 근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껏 일해 왔던 캐주얼 브랜드와 달리, 남성 정장의 경우는 하나하나 입어보고 비교해 본 후에 구매로 이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게다가 신사복 정장은 사이즈가 열 가지 이상 나와 꼭 손님이 입어보아야 했다. 다시 말해, 정장은 어깨 길이, 품 사이즈, 허리 사이즈 모두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소매 기장과 바지 기장까지 완벽하게 수선해야 비로소 판매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남성 정장 브랜드마다 디자인이 대동소이하여 판매사원의 친절함이 구매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실수를 해 자신감이 떨어져 갔지만,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나는 말 그대로 죽어라 일만 했다. 나를 믿고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백화점에서 남성 정장 코너를 보는 눈은 조금 남다르다. 매출 규모가 워낙 크고 남성 매니저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탓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 정장 매니저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관계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했다. 더욱 성실하고 더욱 친절한 모습을 보여 주며 매출로 결과를 보여 주어야 했다. 

 

 

 

첫 출근 후 업무를 보고 있는데 타 브랜드 사장님께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전 소장, 담배 한 대 피러 가지.”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저 담배 끊었어요, 사장님.”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판매사원들이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해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려 퇴근 후 술과 담배가 유일한 위안인 양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다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담배나 술로 위로받지 않기로. 나는 술 접대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또한 신사복의 여성 매니저라는 것이 큰 이슈거리였기에 행동거지 하나도 신중하게 하려 노력했다. ‘여자니까 저렇지.’하는 말이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근무 태도에 ‘전현미=성실’이란 글자가 박히도록 확실히 했다. 항상 백화점에서 1등으로 출근했고, 퇴근 후 남자 직원들과 함께 당구를 치러 가는 등의 노력으로 남성들의 문화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남성 매니저들과 같은 위치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독일 속담 중에 “진리는 짧게 답한다. 그러나 허위는 길게 변론한다.”는 말이 있다. 남성들이 가득한 정글 속을 거쳐 온 내게 큰 깨달음을 준 말이었다. 여성이 드문 시장에서 홍일점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럴수록 쉽게 가지 않고 더 당당하게 행동했다. 그 덕분에 지난날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은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

나에게 불황은 없다 <전현미> 저

태인문화사, 2018년05월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