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인 2045년. 시궁창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VR 게임 속 가상현실에 집착한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이 가상현실은 여러 개의 행성에서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파밍하는 오픈월드 RPG. 생리현상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오아시스에 사람들이 집착하다 보니, 현실에서도 게임 캐릭터의 강화를 위해 현실의 모든 것을 걸곤 한다. 오아시스의 개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는 세상을 떠나며 오아시스에 세 가지 미션을 남긴다. 모든 미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할리데이의 유산.

트레일러 빈민촌에 사는 파시발과 친구들은 할리데이와 대중문화에 연관된 수 많은 이스터에그들 속에서 미션의 해답을 얻어내야 한다. 개발자인 할리데이와 플레이어인 사람들이 사랑한 시절로 채워진 세계이기 때문에, 8, 90년대 영화와 게임, 음악, 만화 등으로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의 끝판왕. 누구든 좋아하는 영화나 게임 캐릭터를 하나 이상은 만나게 될 것 같다. 다른 이스터에그들은 워낙 짧게 등장하기도 하고 이제 와서 학습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두 번째 미션의 중추로 쓰이는 "샤이닝" 만큼은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 주요 장면이라도 보고 가는 것이 좋아 보인다.

좋아하는 영화와 게임 캐릭터를 발견하고 그들의 제작 배경과 관려한 다양한 농담을 이해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재미이긴 하지만, 게임 속 가상현실 세계에서 해보고 싶은 다양한 것들을 간접체험하며 상상하는 재미도 크다. 한 사람의 인생을 3D로 렌더링 해 둔 박물관, 음악을 원하는대로 틀어 둘 만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클럽 등 가 보고 싶은 곳들도 많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포인트들을 노년의 감독이 위화감 없이 디테일하게 그려냈다는 건 아무리 젊은 세대의 조언을 받았다고 해도 쿨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나이 지긋한 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살리고, 어린 세대에게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할 것 같다. 스필버그의 스타일을 "쉰들러 리스트"와 "쥬라기 공원"으로 양분해서 정의한다면, 후자의 스필버그로서 정점에 오른 영화 아닐까. 역방향 레이싱과 같이 시청각적으로 엄청나게 황홀한 부분들은, 판타지 오락영화의 거장으로서 입지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비주얼과 사운드의 영역도 좋지만, 좋아하는 대중문화에서 이스터에그를 발견할 때의 즐거움과 그걸 심어둔 제작자에게 갖게 되는 애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해줬다는 감성적인 면에서 크게 감동 받았다.

하지만 감동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의 크기도 상당하다. 식상한 전개와 진부한 훈계는 덮고 무시하기엔 심하게 불편하다. 게임 개발자는 왜 늘 어눌한 말투의 사회부적응자여야 하고, 게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은 왜 누구보다 시궁창 인생을 사는 찌질이어야 하는 건지, 여주인공은 당찬 반군 캐릭터이면서도 왜 고작 반점 때문에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자책하는 건지, 악당은 도대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멍청하고 허술한 건지 전형적이고 유치한 캐릭터 설정에 넌더리가 난다. 특히 현실 도피하던 주인공이 게임에서 사귄 여친과 돈과 지위를 얻고 자기 삶이 편해지니, 마음대로 게임규제를 단행하는 당황스러운 결말은 너무 모순적인 것 아닌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겠지만, 그걸 표현하는 내러티브는 CG만큼 세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