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괜찮다는데 혼자 불만인 사람, 그냥 넘어가도 좋을 걸 짚고 넘어가는 사람. 그렇게 유난인 사람으로 지냈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고 피곤해지는 건 나뿐이었다. 정작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바뀌지 않았고 비교적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내 눈치를 보기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나는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 무심한 사람이 되어갔다. 나 하나쯤 움직인다고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고, 개인적인 소소한 만족이나 챙기면 되는 용기 없는 소시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무례한 사람들은 내 레이더에 꾸준히 걸러지긴 했다.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끊임없이 나를 들었다 놓는 사람들이 곁에 사라졌다가도 금세 생겨났다. 여긴 괜찮겠지 싶은 무난한 집단에 속했다고 생각해도, 이제껏 본 적 없는 수단으로 예상 밖의 무례함을 시전하는 사람이 꼭 내 곁을 채웠다. 다신 안 봐도 되는 사람들은 걸러내는 건 어렵지 않아졌지만,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무례하게 굴 때면 끊임없이 작아졌다. 많은 걸 포기하고 내려놨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어보면 억울한 일들이 늘어났다. 싫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 등의 표현은 고사하고 무리한 요구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나를 거듭해서 발견하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다시 짙어졌다.

버릇 없고 기가 세다는 얘길 들어가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던 나지만, 역시 다년간의 사회생활 속에서 일종의 '사회화'가 되어 버렸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감정을 숨기는 능력을 얻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은 죽지 않았던 것 같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읽으며, 사회생활을 할 땐 참아야지, 감정은 드러내봐야 내 흠만 잡힐 뿐이야 라는 생각에 갇혀 있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 내가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그거 다 아는 얘기잖아, 말이야 쉬운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어쩐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했던 고민이 그대로여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지지 같아서 와 닿았다.

이 책의 조언들은 예민한 사람들이 공감할 부분이 많다. 남들은 괜찮다는데 굳이 예민하게 굴어서 불편한, 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자각하고, 그들과 똑같이 무례하게 굴지 않되, 자신만의 대처법을 가져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들은 우리의 예민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린 알지 않는가. 예민한 만큼 뛰어난 눈치로 미움 받을 일들을 모르고 저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걸. 하다 못해 개인의 성향도 이런데, 욕을 백 마디 해줘도 성에 안 차는 상황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처리해버리기 나름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는지는 고스란히 내 몫일 뿐이다. 그간 참았던 것들을 이젠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곱씹다 보면 결론은 늘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내가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했을 거야',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닐까?'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만 남는다. ---. p. 7

내 인생은 롱테이크로 촬영한 무편집본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결국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 p. 81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 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 p. 144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떨어?" 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은 다른 사람들이 참거나 피하면서 생겨난 가짜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인류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함으로써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부당함을 더는 참지 않기로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것이라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세상의 진보는 지금까지 그렇게 이루어져 왔다. --- p.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