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길을 찾았으면, 무조건 가라!
길을 찾았으면, 무조건 가라!
나는 뭔가에 꽂히면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특히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생기면 무조건 욕망의 소리에 충실하게 반응한다. 때론 가능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우선은 도전하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수정하고 보완하여 반드시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애쓴다.
나는 돈이 없었던 덕분에 ‘100억 원’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껏 내 안의 것들을 짜냈다. 나는 여러 업종의 일을 경험해봤다. 남대문시장 짐꾼부터 학습지 영업사원, 목각교구판매사업, 부동산 중개업, 기획사 매니저, 신문사 영업사원, 경호원 등 전혀 관련이 없는 업종들을 오가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서른 살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내가 평생 뼈를 묻을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땅을 고르며 비옥한 옥토를 만드는 데 정성을 들였다면 이제는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위한 정성을 들여야 할 때였다.
당시 나는 음식장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100억 원’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장사, 그중에서 정직한 땀으로 승부를 거는 음식장사가 최선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음식장사를 하겠다는 큰 숲이 결정된 이후,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 즉 어떤 음식을 팔지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내가 한 식당을 가리키더니 큰 호기심을 보였다. 얼핏 보니 뼈다귀집 같기도 하고 감자탕집 같기도 했다. 웬만해선 떼를 쓰지 않는 아내였기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식당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는 국물을 목에 넘기자마자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맛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집에 들러 여러 메뉴들을 시켜 먹어보았다. 친구나 선배,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항상 그 집에 가서 음식 맛의 평가를 부탁했는데, 다들 하나 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의 확신에 지인들의 확신까지 보태지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감자탕이란 아이템이 내 인생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2000년을 열던 서른 살의 겨울이었다. 감자탕 장사에 대한 확신을 얻은 후 나는 무조건 그것을 향해 돌진했다.
“여보, 우리 저거 하자.”
“네? 감자탕 장사를 하자고요?”
나의 느닷없는 말에 당연히 아내는 황당해 했다. 음식장사를 해본 경험도 없거니와 점포를 얻을 돈조차 없는데 대뜸 장사를 하자니 황당할 수밖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온 나라가 외환위기의 늪에 빠져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몸을 사리며 웅크려 있어도 위험한 상황에 나는 아내에게 펄쩍 뛰어올라보자고 한 것이다.
“그럼 돈은요? 돈이 있어야 장사를 하죠.”
“우리가 왜 돈이 없어. 집이 있잖아.”
나는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빼서라도 장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단호한 표정에 아내는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감자탕 장사에 대한 확신이 서자 나는 다른 선택지를 모두 없애고 오로지 한곳만 바라보고 가기로 결심했다. 우선, 다니던 회사부터 그만뒀다. 당시 신문사 영업과 경호원 일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수입이 꽤 괜찮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의 한곳을 붙잡고 있는 것이 싫어 과감히 정리했다.
그날 이후 나는 머릿속에 계산기가 작동되지 않는 사람처럼 오로지 ‘감자탕’만 보고 달려갔다. 가진 돈이라고는 아파트 임대 보증금 6천만 원이 전부였으니 자금 계획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 마음에 드는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가게자리를 보게 됐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돈으로 어림도 없는 자리였다. 그 점포에 감자탕 가게를 열려면 1억 8천만 원정도가 필요했다. 1억 2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돈을 구할 방도도 마련하지 않은 채 덜컥 점포부터 계약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친구, 선배, 후배, 군대동기 등 연락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부탁했다. 돈을 빌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 줄 처음 알았다. 게다가 경기가 너무 안 좋았던 때라 빌려주고 싶어도 빌려줄 돈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심장이 바짝 타들어갈 정도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다행이 잔금을 치르기 하루 전에 극적으로 돈을 모두 마련했다.
모든 일은 항상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강한 확신으로 시작한 일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되돌아갈 길을 남겨둔다. 하지만 진짜 그 일을 성공시키고 싶은 절실함이 있다면 다른 선택지를 남겨두어선 안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 남은 목숨마저 내걸 때 진짜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