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상하(常夏)의 나라이다.

일년 사시사철 꽃과 과일이 넘쳐난다.

열대지방의 대부분 나라들이 그렇듯 참으로 부럽고 복받은 나라이다.

한 쪽 논에서는 모내기를 하는데, 건너편 논에서는 추수를 하는 나라.

도로변 아름드리 나무에서도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한아름도 더 되는 과일이 나무마다 자랑처럼 달린다.

열대 남국으로 여정이 잡히면 떠나기 전부터 침샘이 터지는 이유는

다양한 맛과 향을 쏟아내는 과일 탓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나를 사로잡은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람부탄(Rambutan)이라는 과일이었다.

와아~ 람부탄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람부탄 발견!

그런데 가격이 5000루피아?

하지만 어느 정도 양에 그 가격인지 단위가 없어 

궁금증 폭발!

인도네시아 루피아를 한국의 원으로 환산할 때 그냥 단순한 셈법으로

'0' 하나만 빼면 되니 5000루피아는 500원?

엄밀히 따지면 450원!

그런데...

람부탄이 450원이라고?

껌 한 통 값도 안되는 가소로운 가격.

그렇다면 450원어치 얼마나 줄지가 관건인데,

잠시 차를 세우고 하나 달랬더니

줄기 하나를 통째로 건네준다.

450원 주고 득템한 람부탄!

한 가지에 얼추 30개 정도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람부탄 과육 하나에 15원 꼴~

우와~ 진짜 싸긴 싸다.

람부탄이라는 이름을 따져보면

람붓(Rambut)은 인도네시아어로 '머리카락'이라는 의미!

거기에 -an이라는 어미가 붙어

람부탄(Rambutan)이라 불리는 이 과일은

그 생김새 때문에 이름도 머.리.카.락!

중국에서도 머리카락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홍모단(紅毛丹)이라 부른다.

그 맛은?

가지에서 막 딴 것이니

풍부한 과즙이 달콤달콤~

순식간에 가지 하나를 다 털었다.

싼게 비지떡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가지 10개 정도 살 걸 그랬나? 쩝~

람부탄 300개에 4500원!

꺄악~ 적응이 쉽지 않은 사랑스럽고 착한 물가 같으니라고!!

모름지기 과일은 나무가지에서 원래의 햇살을 받고 익어야 제맛이다.

간장은 재래식 장독에서 익어야 제맛이고

횟감도 바다에서 파도 맞아가며 단련되어야 제맛이듯이.

조금 누추한 모습을 보여도 상관 없다면

동네 아이들에게 장대라도 하나 빌려 람부탄 서리를 해도 좋다.

물론 주민들의 손가락질과

혹시 날아올지 모르는 돌세례는 감수할 수 있는 배짱은 필수!

단언컨대, 람부탄은 여인의 과일이다.

람부탄은 피부 주름을 없애주고,

탄력을 증진시키며 미백효과까지 있다.

게다가 신체의 면역력을 높이며,

변비, 설사에도 효과가 있고,

비타민C를 포함, 필수 아미노산의 보고로 주가를 더하고 있다.

심지어 나무껍질과 뿌리는 소염 살균 성분이 있어

현지인들은 양치할 때 활용하고 있다고.

인도네시아에서 묵었던 지인의 집 앞으론

아침마다 람부타 파는 아줌마가 지나가는데,

람부탄홀릭이 된 나는 

문밖으로 들리는 "람부탄~~~" 소리에

버선발로 달려나갔다.

이만큼의 20.000루피아.

우리 돈으로 1800원!

역시 싸다!

한국에서 먹었던 람부탄은 냉동이라 과육이 질겼는데,

열대지방 현지에서 먹는 람부탄은 

동글동글 탱탱한 열매를 입에 쏙 넣으면

보들보들 씹히며 입안 가득 번지는 달콤함이라니...

그 맛에 한번 빠지니 쉽게 헤어나기 힘들다.

어찌나 자주 사먹었는지,

이후 람부탄 행상 아주머니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앞을 지날때면 아예 그 앞에 멈춰서서

유독 큰 목소리로 "람부탄~~~"을 외치더라는!! ㅋ

지금 인도네시아는 바야흐로 람부탄의 계절.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가에 람부탄 파는 곳이 지천인데...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이곳 자카르타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의 나이 여섯 살부터 열 살이 될 때까지. (1967~1971)

재혼한 그의 백인 엄마를 따라 인도네시아인 새아버지의 나라인 이곳에서

오랑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인)로 4년을 넘게 잔 뼈를 키웠다.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살아가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답.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음식은 람부탄과 나시고랭이었다."

그렇게 람부탄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그리워하는 과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말레이시의 붉은 보석"

"인도네시아의 황금열매"

모두 람부탄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산지 근처에서 파는 람부탄은 급이 좀 다르다.

람부탄 중에도 이렇게 초록빛깔이 나는 것은 더 고급으로 치기에,

빨간 빛깔의 람부탄 보다 가격이 3배나 비싸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맛의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한 게 사실.

산지에서 막 따온 신선한 람부탄이 길거리 매장에 입하되고 있다.

오토바이 한 대에 실려오는 엄청난 신상 람부탄.

저 많은 양이 과연 다 팔릴까?

먼데서 온 나그네는 급기야 원주민의 민생고까지 걱정하고 있다.

오지랖이라는 말은 이런데 써야 제격이다.

신상 물건을 넘겼으니 일단 장부정리는 필수!

물건 값 계산은 주말 정산을 할까, 아니면 월말 정산을 할까?

다 못 팔면 재고는 환수를 해줄까? 상한 건 어떻게 하지?

싱싱한 람부탄 배불리 먹고 긴장 풀린 나그네는 지금 별걱정을 다하고 계신다.

여기도 소득의 불균형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나보다.

납품 오신 생산자 아저씨는 작고 왜소한데,

판매업자인듯한 아저씨는 불룩한 배가 증명하듯 영양상태가 넘쳐난다.

경작에 노고가 많으신 생산자가 부디 잘 살아야 하는데...

하염없이 싸고, 더없이 싱싱하며 대단히 맛있는 람부탄!

평생 먹을 양을 며칠 사이 다 먹은 듯.

람부탄을 보는 나의 눈동자에서 하트가 뿅뿅 발사되는 걸 확인한 배불뚝이 사장님.

람부탄 두개를 덤으로 건네주는데...

'내 미모를 보고도 고작 두개야?'

살짝 흘겨봤더니

몸매에 너무나 여유가 묻어나시는 사장님, 내게 묻는다.

"다리 마나?"

"응? 내 다리는 두개 밖에 없는데......"

인도네시아어를 잘 하시는 분이 통역해주시길

어디서 왔냐고 묻는단다.

오호~ 다리 마나 (Dari mana?)가 그런 의미였군.

난 자신있게 "오랑 코레(한국사람)" 이라고 답했고,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한 그는

"미원~" 하며

발로는 공을 차는 시늉을 한다.

미원은 이 나라에 진출한 우리나라 조미료 회사의 이름이고

너희 나라 (Korea)는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의미의 몸짓이었다.

사실 인도네시아의 일부 주민들은 조미료라는 뜻으로 미원을 보통명사처럼 쓰는데,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사람이 조미료를 엄청 많이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의 경운기 이름은 "대동"(우리 나라의 농기계 생사 회사 이름)이다.

이 나라에 오자마자 빠져든 나의 람부탄 사랑.

이러다 람부탄 농장이라고 갖고 있는 남자 만나면

당장이라도 이 나라에 눌러앉을 태세!

람부탄 껍질을 어찌나 많이 깠던지

손톱 밑이 시커매져 손톱만 보면 인도네시아 현지인!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람부탄 1000개는 깐 듯.

사과 깎는 건 자신 없어도 

람부탄 까는 것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람부탄이 가장 왕성히 수확되는 이맘때에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간 것은

태어나서 내가 한 일 중 제일 잘 한 것이었다. ㅋ

인도네시아에 상주하시는 지인 분이

내게 의미로운 별명 하나를 지어주셨다.

이름하여 '동초'

의미심장하게도 '동남아 초보'의 줄임말이란다.

그 좋은 열대 과일이 지천에 널렸는데

시골스럽게 람부탄에 광분하고

크게 감명 받을 일도 아닌 풍경에 쉽사리 감탄사를 날린다고.

흡사 동남아에 처음 온 사람 같다고.

또한 나의 인도네시아 이름도 우아하게 하나 지어주셨는데,

'오랑 깜풍'

굳이 우리말로 옮기고 싶지 않지만,

그 뜻은 아름답고 숭고하기 그지 없으니,

'촌놈' 이라는 뜻이다.

초보도 좋다, 촌놈도 좋다.

여행은 그렇게 처음인 것처럼 감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익혀가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