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꽃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아니다, 비로소 사람과 차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하동 십리 벚꽃 길은 우리나라 벚꽃 길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하동 섬진강 육십리 길은 벚꽃 터널을 머리에 이고 달리는

가장 긴 드라이브코스의 백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벚꽃이 피고지는 불과 보름여 이 곳에는 전국의 모든 사람과 차량들이

흡사 피란민처럼 쓰나미가 되어 모여든다.

 

섬진강변의 벚꽃의 역사는 80여년을 상회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하동의 벚꽃은

광양에서 하동을 거쳐 구례에 이르는 장장 60릿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벚꽃으로 인해 전국이 백반증을 앓을 정도로 확산되는 벚꽃 열풍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뭘까.

 

먼 길을 가야합니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꾸욱~!

 

 

 

3월말, 4월 초,이 무렵이 되면 흡사 벚꽃놀이 한 번 하지 않으면

모든 국민이 조류독감이라도 걸릴듯이 몰려드는 남도의 몇몇 도시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듯 꽃놀이에 열광하는 민족이 되었을까,

몰론 나도 오늘은 특별히 조류독감 예방차원에서 이 자리에 섰지만...

 

이 곳은 도로가 아니다. 쌍방향으로 주차해야하는 주차장이다.

일반 주차장과 차이가 있다면,

이 곳은 시동을 켜고 비싼 기름을 소진해가며 주차한다는 것,

차라리 걸어 가는 사람이 한 없이 부러운데...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항상 옳은 말이다.

나오면 개고생, 안나오면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이놈의 진절머리나는 역마살...

 

 

벚나무, 버찌의 나무라는 예쁜 우리 말 이름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의 오랜 기록에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기록이 없다고한다.

기록물에 나타나는 벚나무의 효용은 오로지 군사용 활의 재료(궁재-弓材)인

화피(樺皮-벚나무 껍질)를 얻기 위해서 식재했다고 나와 있을 뿐이다.

작고 짧게 가벼운 몸짓으로 피었다가 역시 가벼운 흩날림으로

소멸해가는 벚꽃의 생리가 무거움을 지향하는 우리 선비들의 체면에는

썩 어울리지 않았기에 아예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벚꽃을 꽃놀이의 위락으로 남겨준 것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다.

 

서울에서 벚꽃으로 유명한 우이동의 벚꽃도 사실은 대륙정벌을 기획했던 

효종임금이 350여년 전 활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용 조림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기를,

일본의 국화(國花)로 벚꽃(사쿠라)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화는 애시당초 없다.

 

<일본 왕실의공식문양, 십육엽 야에기쿠(八重菊)>

 

또한 일본의 국화(國花)로 일부가 잘못 알고 있는 국화(菊花)도 일본 왕실의

문양일뿐 공식적인 국화(國花)는 아니다.

우리의 이씨(李氏)왕조의 문양이 오얏꽃이었듯이.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벚꽃을 그들의 상징으로 인정한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식국화(國花)보다도 더 확실한 나라꽃으로 자인한다는 말이다.

일시에 폭발적으로 짧은 시간을 피었다가,

화려한 낙화의 향연을 펼치며 역시 한꺼번에 스러져 가는,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과 맞아떨어진다는 합리화와 더불어.

 

그리하여,

조선을 강압적으로 병탄한 일본 통감부는,

조선인의 민족 정서를 일본화하기 위한 수많은 주입식 정책을 도모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한반도의 전국토에 벚나무 심기였으니.

 

그 전략의 시작점으로 창경궁, 남산, 장충단에 어린 묘목 사쿠라가 이때 식재된다.

그 무렵 어리석은 순종황제는 사쿠라 꽃을 보다 일찍 보기 위해서

묘목이 아닌 일본의 큰 성목(成木)을 일본 군함으로 실어와서

궁궐의 자신의 침소 앞에 심도록 직접 지시했다하니...

 

 

이에 쾌재를 부른 일본은 기회를 놓치지않고 광화문에서 부터

서울의 모든 도로에 사쿠라의 어린 묘목들을 식재했으나,

순종황제 보다는 훨씬 똑똑했던 조선 민중은 강력한 항거로

그 묘목을 뽑아버리고 다시 심기를 거듭했으나 결국은 일본이 굴복,

사쿠라의 전국화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선의 합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제는 우리의 황궁인 창경궁을 개조해 냄새나는 동물원(창경원)로 개조하고

구석구석에 벚나무를 심어 그들의 벚꽃놀이(하나미-花見) 공간으로

격하시켜 엄숙한 공간의 의미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이 때 만들어진 일본인들의 꽃놀이의 원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우리에게 봄놀이의 모습으로 관광버스 안에 남아 있다. 

 

 

또한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의 전진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경남 진해를 군사항으로 개발하고 진해 곳곳에 벚나무를 심었으니,

오늘날 우리나라 봄의 출발지, 벚꽃의 대명사처럼 추앙받는

진해 군항제, 진해 벚꽃이 안고 있는 슬픈 내력이기도하다.

 

 

해방을 맞이하고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는 차원에서 일부 벚나무를 잘라내기도 했으나

이내 들어선 군사 정부에서는 그나마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그렇게 일제 시대에 식재된 벚나무를 남겨두어서

오늘에 이르도록 한 일에 대해서는 시비의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일제가 전국의 도로를 한사코 그들의 사쿠라로 뒤덮을 욕심을 부렸는데도

민초의 항거로 이루지 못했던 그때의 과업이 요즘 들어서

우리 손에 의해서 전국으로 벚나무 식재가 활성화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남도를 관통하는 2번 국도를 달려보면

하동 벚꽃 십릿길, 진해 시내 벚꽃 도로에 못지 않는

수령 10~40년 내외의 벚꽃길을 오래도록 만날 수 있으니.

 

어디 그뿐인가,

전국의 지방도로, 사찰, 심지어 역사 유적지까지

지금 벚나무는 우리나라의 가장 익숙한 도로변 풍경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어느 외국인의 여행담이 왠지 서글프다.

"이른 봄의 일본의 풍경과 한국의 도로 풍경은 구분이 안된다"라는.

 

참고로,

군사정부 시절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 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이른바 이중 첩자 같은 행태의 정치꾼을 일러

"사쿠라"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때의 "사쿠라"는 벚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에서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여서

판매한데서 비롯된 말로 "가짜", 혹은 "말고기"라는 뜻에서 비롯.

 

 

혹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 땅에 식재된 대분의 벚나무는 왕벚나무로써,

유전자 감식을 해보면 그 기원이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여서

민족적 정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그게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학자들,

그리고 일본의 극히 소수의 양식있는 학지들의 의견일 뿐이다.

 

뿐만아니라,벚나무의 그 많은 종류를 육안으로 식별해서

우리 것 너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꽃벚나무...

 

 

미국 워싱톤의 포트맥 강변에도 유명한 벚나무 군락이 있다.

100여년 전 일본이 미국과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에서

가져가서 조성한 벚나무 공원이다.

 

이 곳의 벚나무도 생물학적 분석을 해보니 제주도를 원산지로 하는

왕벚나무 였다고 해서 공원에 붙여진 해설문을 일본 벚나무 대신

한국 벚나무로 고쳐달라고 요청했더니

애매하게 오리엔탈 벚나무(Oriental cherry Bloosom)로 수정은 되었다지만.

 

 

벚꽃 필 무렵의 섬진강 60리는 사람잡는 길이다.

우리는 벚꽃 보러 왔는데 현지 원주민들은 우리를 구경한다.

우리는 막대한 기름값 들여서 천릿길을 달려왔는데

그들은 저녁밥 먹다 나와서 담배 한 대 물고

슬리퍼 차림으로 서서 담장 밖의 허기진 나그네들을 구경 한다.

 

어르신의 눈에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해도 넘어가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가야할 집도 까마득히 멀텐데...

 

 

이미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은 죄가 없다.

그들을 구태여 깡그리 베어낸다면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오래 전부터 많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수목들이 많다.

새로 식재하거난 확대 보수를 해야하는 도로 만이라도

우리 향기 물씬나는 수목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할까~?

 

이를테면...

살구나무, 야광나무, 귀룽나무, 복숭아나무,조팝나무,산사나무, 돌배나무...

 

 

차가 막히고 대책이 없어지면 생각이 많아진다.

수려하고 유쾌하고 보람차면 생각이 없어질까.

단언컨대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생각과 느낌을 대전제로 하기에.

 

벚꽃 필 무렵 섬진강 벚꽃길에 가면 세가지로 인해 환장을 한다.

차가 막혀서 환장하고

배가 고파서 환장하고

그리고 꽃 경치기 너무 황홀해서 환장한다.

그런데 나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의 환장 뿐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역시 변함없이 남도의 꽃구경은 개고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나는 이 길위에서 또다시 세월을 낚을 것이 확실하다.

 

여행은

기다림과 지루함 그리고 피곤함이라는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자리에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