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땀 흘려 걷기 위해 그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

사람들은 힘들여 걷기 위해 수백릿길을 차를 타고 달려간다.

또한 사람들은 수십릿길을 택시를 타고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

그 먼 곳으로 걸어간다.

바보처럼...

 

왜 현대인들은 스스로 이런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행위를 할까.

반드시 내려 오고야마는 산을 기를 쓰고 오르고,

다시 원점으로 회귀 하고야마는 길을 돈까지 들여 걷는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결국은 다시 왔던 곳으로 소멸한다고 생각하면 애초에 오지 않을 일이다.

저녁에 다시 이불을 깔 생각이면 일년 열 두달 침대위에 이불은 그대로 둘 일이다.

 

길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세월의 절묘한 합작품이다.

죽은 것은 길을 만들 수 없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와의 만남이다.

그게 때론 내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가 될 수도 있고,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내 속의 타인"이 될 수도 있으며,

더러는 내 몸 속을 벗어나서 타인처럼 존재하는 "전혀 다른 나"가 될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많은 길을 걸었다.

산길을, 들길을, 신작로를, 그리고 페이브먼트를...

 

오늘은 참으로 포근하고 단아한 바닷길을 걷는다.

 

길을 떠나는 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꾸욱~!

 

 

 

 세상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길들은 세월 만큼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의 발자국과 세월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세상의 길이다.

하지만 세월과 사람은 흘러 가버리면 그 뿐이지만,

길이야 어디 그런가...

길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서 뒷 사람들의 길벗이 되고 이정표가 된다. 

 

 

제주 올레길은 남쪽 나라의 섬을 에두르는 이방(異邦)의 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인간의 애환과 지리(地異)의 장엄함을 버무린 질곡(桎梏)의 길이다.

그렇다면 여기 바우길 5코스는 한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안식(安息)의 길인 셈이다.

 

 

총길이 16km, 소요 시간 6시간, 거리와 시간은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쉬어가고자, 스스로 땀을 흘리고자 먼 길 마다않고 내 발로 달려왔는데,

그 거리가 멀면 어떻고 그 시간이 길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저 그 정도의 거리가 오늘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만 참고할 뿐.

 

 

바우길이건 해파랑 길이건...

이 길이 끝나는 싯점까지 동해안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태평양의 한 쪽 손을 잡고가는 제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굳이 얼굴을 비쳐보지 않아도 여기 이름이 왜 경포호(鏡浦湖)인지,

겨울 하늘을 잔뜩 이고 있는 그 청정함이 수면위에다 설명하고 있다.

 

 

너에게로 다가가는 것보다

겨울 바다로 가는게 오히려 더 가슴설레는 것인 줄

그 날 처음 알았다.

 

 

가을에 보낸 그리움과 봄에 만난 설렘이

불현듯 같이 누워 한 이불을 덮고 있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막상 달려가보면 간밤에 벗어둔 배낭속에 있었던 것을

그날에야 처음 알았다.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등을 돌렸는데

뒤를 돌아보니 잎보다 먼저 핀 꽃처럼 성급했다는 것을

그날에야 처음 알았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떠나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저 만치에서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겨울 바람이 밀어 부치는 취기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이 길을 떠나고 있었지.

간이역에서는 기차가 오지 않아서 떠났고

낯선 포구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서 떠났을 뿐.

 

 

그때 비로소 알게된 절망과 갈망은

길 위에 서면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떠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쓰라림을 안고도 길을 나선다.

 

 

오늘도 경포대 해변에선 갖가지 사유로 떠나온 사람들에 의해

갖가지 추억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름바다가 몸으로 추억을 만든다면 겨울 바다는

가슴으로 추억의 보석 상자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

산은 산을 벗어나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길은 길 위에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타인들은 멀리서 바라봐야 더욱 아름답다.

 

 

이 겨울에 얼마나 좋은가,

하나보다 둘이라서~! 

 

 

바라보는 방향은 같지만

같은 둘이라도 어디서든 예외는 있기 마련...

 

 

 

서럽도록 퀭하니 비어버린 겨울 바다.

겨울 바다엔 언제 가도 누군가를 위한 여백이 있어 좋다.

그 어느 한적한 곳에 나를 내려놓아도

항상 겨울 바다는 마다하지 않는다.

 

 

 

겨울 바다의 어느 길에서도 잰걸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느 곳을 가든 가장 안락한 간격으로 걸어도 좋다.

 

 

 

겨울에 나선 이 길은 굳이 쉬어가지 않아도 좋다.

이 길은 걸음이 쉼이고 쉼이 곧 걸음이기에...

 

 

솔향의 향기는 호흡을 하는 살아 숨쉬는 이들에게 축복이다.

걷는 이들에게는 힐링이고 또한 충전이기도 하다.

 

 

솔가리가 지천으로 깔린 길, 그 밑에는 모래가 넘실댄다.

양의 털로 짜면 양탄자라고 부른다지...

그렇다면 이 길은 당연히 솔가리탄자라 불러도 좋다.

 

 

굳이 어려운 말로 피톤치드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소나무들의 호흡이고 그들의 입김이라 불러야 옳다.

그 들이 내어주는 그들만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과 체온을 나누며 간다.

 

 

어느 길이건 아프지 않고 쓰라린 흔적하나 없는 길이 있던가.

아프다 여기고 쓰리다 느낀다면 얼른 헐어내고 지울 일이다.

앞선 이가 무능해서 못했다면 우리라도 손을 합쳐

온전한 길로 하루 바삐 다시 만들어야 할 터.

 

 

문을 열어 둘 수 있다면 담을 허물 수도 있는 일,

똑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인류라면 사람간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진대

철책을 두르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다는 것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가장 빠른 미래에 반드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지역은 한때,

우리의 아픈 현대사 무렵, 군사 작전 지역으로 묶여 선량한 국민들의

통행을 방해했던 부끄러운 흔적입니다.

 

 

아무런 화장기 하나 보태지 않아도 얼마나 아름다운 해변인가.

청량한 바다와 결고운 백사장 그리고 세계적으로 범례가 없는 해송 숲의 장관,

그리고 그들을 냉엄하게 갈라놓은 날카로운 철조망,

둘에게 모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을...

 

 

해송 숲길의 체감거리는 십리가 넘는다.

그러나 그 길은 한없이 포근하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누며 걸어도 좋고

세 살바기 아이랑 같이 걸어도 좋고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걸어도 좋다. 

 

 

소나무들이 하염없이 뱉어놓은 그들의 입김들이 파스텔톤 하늘색을 연출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건강한 숲길을 본 적이 없다.

여름에 돗자리를 깔아도 좋고

이 겨울에 차분한 내려놓음의 자리를 연출해도 충분히 감동적인 길.

 

 

솔방울들도 지천이다.

내 속에 너무나 깊이 숨어서 나조차도 내려놓지 못한 응어리 같은 것들,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너무나 쉽게 내려 놓았다.

 

 

모래만 깔았다간 행여 먼지라도 날릴까

정성들여 뿌려놓은 솔가리들,

그들의 어김없는 내려놓음이 있어서 이 길은 더욱 예쁘다.

 

 

 

아무리 편하고 좋은 길도 쉬임없이 계속 갈 수는 없는 일.

언제나 먼 길을 가다보면 마주치고 싶었던 것들,

그들 앞에 잠시 체중을 낮추고 갖는 다향의 시간도 이 길의 덤이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제각기 선 해송들은 하늘을 이고 있고

땅위에서는 맥문동들이 가을 꽃을 내려 놓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겨울 바다는 나그네를 훔쳐보고

가끔씩 소스라치게 달려드는 해풍에 나그네는 옷깃을 여민다.

 

 

안목해변 도착!

지금 이곳은 커피거리로 유명세를...

초창기 우리 나라에 원두커피를 처음 들여온 세 사람이 모두 강릉 사람이었던 터라

이곳에 커피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겨울해는 노루 꼬리보다도 더 짧다.

저마다의 하루 사연을 내려 놓으며 일상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솔바람다리, 강릉은 솔향도시란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일 터.

 

 

 

 

겨울 바다바람은 시리다.

그러나 깨끗해서 정갈하다.

더 가려고 해도 해가 지는 탓으로 이길의 끝은 여기다.

어디까지나 오늘 걸어야 할 나만의 길만 그렇다는 말이다.

 

 

어디 세상의 길이 끝이 있던가.

어디든 길이 끝나는 곳에서 발자국을 놓으면 그 길은

다시 시작하게 마련이며 인연도 새로운 이를 더하면 새로운 인연으로 시작하는 법.

모처럼 아름답고 편안한 길을 걸었다.

 

 

길이 나빠서 피곤한 게 결코 아니다.

생각이 많아서 마음이 피곤한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내려 놓으려고 서두른 탓이다.

  

길은 많이 걸을수록 더 길어진다.

그리움은 멀어질수록 더 그리워진다.

내 속의 푸르름은 내려 놓을수록 더 푸르러진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푸르를 때 가야만한다

언제 어디로인지는 확실하지 않더라도

이 겨울의 뜨락에 눈이 녹을 무렵이면

그때는 떠나야만 한다.

 

다시 태어남을 꿈 꿀 수 있을 때

절망과 갈망의 어휘를 구분할 수 있을 때

그리하여 그 길에 이정표가 남아 있을때

그때야말로 길을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