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만났던 의성 사촌마을의 가로숲이 다시 궁금하여 나섰는데...

겨울숲에는 휑하니 마음을 훑어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들렸다.

겨울날 바람은 여름날 바람과 마음에 앉는 소리부터 다르다.

그래서 만취당으로 얼른 걸음을 옮겼다.

겨울 만취당과 안동김씨 종택은 깔끔하게 정갈한 속을 내보이고 있었다.

가끔 고택의 참맛을 겨울에 느낄때가 많았는데

긴 겨울에 지친듯...

만취당 대청에 앉아 여름날의 만취당을 그려본다.

여름 구름 낮게 돌담길 가까이 내려앉던 날

나는 사촌마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사촌마을은 산과 들, 강물이 잘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의성에서는 '第一沙村'이라고 불리워지는 곳이다.

원래 안동김씨가 이주하면서 중국의 사진리(沙眞里)를 본떠 이름을 지었다 한다.

처음엔 안동김씨 집성촌이였으나

그후 안동권씨와 풍산류씨가 들어오면서 세 성씨들이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사촌마을에는 재미난 전설들이 많이 전해져오지만

낮은 담장 위로 만취당이 모습을 보이자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즐비한 기와집들 사이에 우뚝한 만취당과 안동김씨 종택이

여름 하늘과 어울려 더욱 환한 모습을 드러낸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고

일단 만취당과 눈인사를 먼저 나누어 본다.

가볍지 않은 끌림이 떨림으로 바뀌고 만다.

담장을 끼고 감촉 좋은 풀밭을 걸어 대문으로 향했다.

담장 기와를 쓰다듬어 보니

내가 세월을 건너고 있는듯한 기분마져 든다.

주변의 즐비한 기와집들이 이런 맘에 한몫을 한다.

여름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대문을 들어섰다.

안동김씨종택(安東金氏宗宅)의 안채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었다.

여름의 더위를 잠시 피하기 좋은 시원함이 느껴지고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보려 안채로 들어오는 하늘을 쳐다보며

어색한 마당에서의 눈길을 피해준다.

종택의 모습은 차분하다.

새로 증축된 사랑채가 안정감 있게 잘 어울린다.

햇살에 눈이 부신걸까?

아까 나눈 눈인사의 떨림에 눈이 부신걸까?

세월을 건너 만나는 순간에는 전해지는 이런 느낌이 너무 좋다.

만취당(晩翠堂. 경북유형문화재 제169호)이다.

퇴계선생님의 제자 만취당(晩翠堂)김사원(金士元 1539 ~ 1601)공이

1582년(선조 12)건립한 건물이다.

만취당은 임진왜란 이전 목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것 중 하나라고 한다.

궁궐이나 절집이 아닌 사가(私家)건축물로는

이미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다.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트여진 문으로

자유로이 오가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건립이후 줄곧 안동김문의 문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구석구석 눈길 가지 않는곳이 없고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곳이 없는듯

올려다본 천장 한쪽에 단청이 되어있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으며

그때 부재를 절집의 것을 가져다 쓴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만취당(晩翠堂) 현판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친필이라 한다.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길 건너에

의성사촌리향나무(경북기념물 제107호)가

500년 세월을 견더 여전히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공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심은것으로 전해지며

만년송(萬年松)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임란때는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시던 기개만큼이나 우뚝한 모습

오래도록 푸르기를 바라셨던가?

만년송과 더불어 만취당도 여전하다.

열린공간에 마음까지 탁트여 절로 시원스럽지 않을수 없다.

가녀린 활주는 커다란 지붕을 받추고 그 힘을 견딘다.

의병활동이 많았던 사촌마을은 일본군이 불을 질러

마을전체가 불에 타는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유일하게 이곳만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만취당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편안하며 너그럽고 넉넉한 모습이다.

대청의 양쪽에 방이 들어선것은 영조년간의 일이라 하며

동쪽에 복재(復齋)를 그리고 후에 서쪽에

서소익실(西小翼室)을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중수기에 전한다.

살금살금 대청으로 다시 올라가본다.

여름 한낮에는 더위를 피해 바람을 만나고

달 밝은 밤에는 달빛과 노닐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만다.

 

이제 여름 만취당과 헤어질 시간이다.

몇번을 쳐다봐도 하늘색과 기와지붕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그리운날에는 이곳이 문뜩 떠오르겠지?

그리고 뭉게구름 하늘을 떠다니는 어느날에도

내 마음은 이곳으로 달려올것이 분명하다.